16년前 기적의 은메달… 그는 여전히 뜨겁다

입력 2018.03.14 03:04

[2018 평창 패럴림픽]

한국 사상 첫 메달 땄었던 '장애인 스키 개척자' 한상민
어깨부상·뇌진탕 속 부상 투혼… 알파인스키, 메달만큼 값진 12위
"열정의 크기는 2002년과 똑같아… 오늘 주종목 대회전 나갑니다"

한상민 선수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23세 청년은 한국 장애인 스포츠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 동계 패럴림픽 알파인스키 대회전 좌식 부문에 출전, 2위로 레이스를 마치며 한국에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을 안겼다. 다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엔 좌식 스키 선수를 위한 지도자조차 없었던 때다. 그의 이름은 한상민(39·사진), 한국 '1호' 장애인 스키 선수다.

16년이 지난 13일 오후 정선 알파인스키장. 팽팽했던 피부엔 주름이 졌지만, 오똑한 콧대와 날카로운 눈매는 변하지 않았다. 좌식스키 위에 앉아 아웃리거(보조스키가 달린 폴)로 설원을 질주해 내려왔다. 한상민은 이날 열린 평창 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수퍼 복합 경기(수퍼 대회전과 회전 경기를 한 번씩 탄 뒤 각각의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 경기)에서 최종 12위(2분23초72)를 기록했다. 슬로프 중간쯤 한 번 미끄러질 뻔했지만, 스키를 돌려세우며 질주를 이어갔다. 한상민은 "예전보다 연륜이 더 늘어난 것 같지 않으냐"며 16년 전 메달을 땄던 그때처럼 씩 웃었다.

2002년 은메달 이후 그는 대회 때마다 한국 대표팀의 메달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연신 미끄러지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06년 토리노에선 2차 레이스 결승선 앞에서, 2010년 밴쿠버에서는 1차 레이스 3분의 2 지점에서 미끄러졌다. 당시 비에 젖은 슬로프가 그의 스키를 붙잡았다. 2014년 소치 대회 땐 어깨 부상으로 출전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많았던 그는 평창 대회를 앞두고 혹독하게 준비했다. 지난해 말부터 유럽·북미를 가리지 않고 각종 대회에 출전,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지난달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을 앞두고는 넘어져 왼쪽 어깨를 다치고, 뇌진탕 증세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운동선수라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며 어깨를 으쓱 추켜올린다.

한국 장애인 스키의 ‘개척자’ 한상민이 13일 평창패럴림픽 남자 수퍼복합 대회전(좌식 부문)에 출전해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 성적은 12위에 그쳤지만 스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처음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2002년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 장애인 스키의 ‘개척자’ 한상민이 13일 평창패럴림픽 남자 수퍼복합 대회전(좌식 부문)에 출전해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 성적은 12위에 그쳤지만 스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처음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2002년과 다를 바 없었다. /연합뉴스

한상민은 한 살 때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두 다리를 쓸 수 없었던 그는 "어렸을 때는 내가 운동선수가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장애인 스키캠프에 참가, 좌식스키를 처음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처음 타봤는데 설원을 질주하는 그 속도감에 흠뻑 빠졌죠. 제게 딱 맞는 스포츠라고 느꼈어요." 한상민은 1996년부터 한국 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운동신경이 탁월했던 그는 장애인 스포츠 전업 선수의 길을 개척해 나간 '1세대'로 꼽힌다. 2008년엔 민간 실업팀인 하이원 장애인 스키 선수단 창단 멤버로 뽑혀 2년여 동안 활약했다. 이후엔 서울시, 국민체육진흥공단 실업팀 선수로 급여를 받았다. 2002 패럴림픽 은메달 연금도 매달 나온다. 그는 눈이 없는 여름철엔 휠체어 농구 선수로 뛴다. 2012 런던 패럴림픽 휠체어농구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풀리그 마지막 일본전에서 1점 차이로 역전패하는 바람에 본선 진출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그 대신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선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한상민은 지난 10일 활강에선 12위, 11일 수퍼대회전에선 15위를 기록했다. 아직 회전과 대회전, 두 경기가 더 남아 있다. 주종목은 14일 열리는 대회전이다. "제 열정은 2002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패럴림픽 무대에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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