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서 우아함 끌어낸 '완벽한 젠틀맨'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8.03.14 03:04

    9일 별세 佛 대표 디자이너 지방시… 그림 잘그렸던 소년서 디자이너로
    평생 친구 美 배우 오드리 헵번 "그의 옷이 내 인격을 완성했다"

    "그가 만든 옷을 입을 때 비로소 진짜 내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옷은 내 인격을 완성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 9일 91세를 일기로 숨진 지방시는 '역사상 가장 우아한 옷을 만든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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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배우 오드리 헵번(오른쪽)과 나란히 선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당시 헵번은 59세, 지방시는 61세였다. 두 살 차이였던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존중하며 친구처럼 지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952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한 이래, 지방시는 오랫동안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맞춤복) 디자이너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이 그의 옷을 즐겨 입었고 오드리 헵번은 40년 넘게 지방시와 교류하며 함께 작업했다. 영화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퍼니 페이스' '백만달러의 사랑'에서 헵번이 입고 나왔던 옷 대부분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특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그녀가 입었던 검정 드레스는 이후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LBD)'로 불리며 가장 유명한 패션 용어 중 하나가 됐다. 요즘도 패션 디자이너들은 여성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옷으로 '리틀 블랙 드레스'를 꼽는다.

    지방시는 1927년 프랑스 북서부 도시 보베(Beauvais)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소년은 1944년 파리에 있는 아트 스쿨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자크 파스·엘사 스키아파렐리 같은 디자이너 밑에서 패션을 배웠다. '지방시' 컬렉션을 내놓자마자 그는 큰 성공을 거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 완벽한 매무새의 재킷을 보며 파리 여성들은 그의 디자인에 금세 매료됐다. 1953년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1895~1972)를 만나 교류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순결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발렌시아가와의 만남으로 지방시는 디자인 세계를 더욱 확장시켰다. 허리끈이 없고 자루처럼 생긴 드레스(Sack), 건축적인 직선을 강조한 여성용 슈트가 이 시기에 나왔다. 패션디자이너 손정완씨는 "지방시는 여성의 몸을 옥죄지 않고도 아름답게 표현했고, 절제를 통해 고귀함을 드러낼 줄 알았다"고 말했다.

    1954년엔 영화 '사브리나' 작업을 하면서 오드리 헵번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헵번은 생전 인터뷰에서 "지방시 옷을 입고 있으면 보호받는 느낌이다. 그의 옷을 걸치면 자신감이 생기고 어깨가 펴진다"고 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유명한 장면(왼쪽 사진). 헵번이 입고 있는 옷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다. 오른쪽 사진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시절 지방시 드레스를 입은 재클린 케네디와 그의 딸 캐럴라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유명한 장면(왼쪽 사진). 헵번이 입고 있는 옷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다. 오른쪽 사진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시절 지방시 드레스를 입은 재클린 케네디와 그의 딸 캐럴라인.
    지방시는 1988년에 자신의 브랜드를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패션그룹 LVMH에 매각했지만 1995년까지 지방시 디자인을 계속했다. 은퇴 직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지방시가 은퇴한 뒤로는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리카르도 티시 등이 지방시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재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12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베르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젠틀맨이기도 했다. 그는 영원한 전설이고 아름다움이며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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