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창인데… 폭력으로 범벅된 러브스토리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8.03.14 03:04

    [영화 리뷰] 치즈 인 더 트랩
    女주인공 스토킹·납치·몰카… 영화 속 로맨스 도구로 쓰여

    연애가 이런 것이라면 정녕 사양하고 싶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치즈 인 더 트랩(감독 김제영)'은 여성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을 로맨스 도구로 활용한다. 대학생 홍설(오연서)은 같은 학교 다니는 인기 많은 선배 유정(박해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말을 걸 용기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이 다가와 "나랑 사귈래?"라고 묻는다. 홍설은 유정과 만나면서 도리어 알 수 없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누적 조회 수 11억뷰를 기록한 같은 제목의 웹툰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동명 드라마가 2016년 TV로 방영돼 인기 끌기도 했다. 제작진은 만화 주인공과 가장 비슷하게 생겼다는 평을 듣는 박해진·오연서·유인영·박기웅을 캐스팅했고, 드라마 방영 당시 '원작을 너무 변형했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의식한 듯 최대한 원작 속 에피소드를 캐내 이야기 줄기를 엮었다. 만화 팬들은 이 소식에 환호하고 있지만, 영화는 그 과정에서 정작 추려야 할 부분을 빠뜨리고 발라내야 할 부분만 잔뜩 주워 엮어냈다.

    대학생 홍설(왼쪽)은 멀게만 느껴졌던 선배 유정(오른쪽)이 다가오자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대학생 홍설(왼쪽)은 멀게만 느껴졌던 선배 유정(오른쪽)이 다가오자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마운틴무브먼트스토리

    원작이 캐릭터 각자가 품은 양파 껍질 같은 속사정을 한 겹 한 겹 들춰내는 아슬아슬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만화 속 사건들만 어지럽게 우르르 훑어낸다. 여주인공 홍설이 시종일관 당하는 고난과 역경도 여기서 온다. 처음 보는 남자(박기웅)가 지하철에서 "따라오라"며 완력으로 끌어내거나 학교 남자 동기가 손목을 마구 잡아끌고 때릴 듯 위협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스토킹·납치·몰카·온라인 왕따·성폭력…. 대한민국 여성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갖가지 두려운 일들을 영화는 116분 러닝타임 안에 죄다 몰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여주인공 홍설은 무력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두려움에 떨며 입술을 깨무는 것, 결정적 상황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선배 유정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 잔혹 드라마를 보며 '나도 유정 같은 남자에게 구원받고 싶다'고 생각할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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