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12] "귀엽게 자란 신세대 병사들 민간인 같다" 국회, 군기 해이 질타… 全軍엔 '삐삐 금지령'

입력 2018.03.14 03:10

1996년 9월 강릉에 북한 무장공비 25명이 침투했을 때 이 지역 집집마다 전화통에 불이 났다. 국군과의 교전이 벌어지고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중대 사태로 번지자 먼 곳의 친척·친지들로부터 "별일 없느냐"는 전화가 쇄도했다. 비슷한 일이 작전 지역 내 군부대에서도 벌어져 논란이 됐다. 초비상 속에 대간첩 작전 중인 부대에서 일과 후 영내 공중전화 앞에 장병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안부를 걱정하는 가족·애인과의 통화였다. 상당수가 '삐삐(무선호출기)'를 차고 있어 호출에 응답하는 듯했다. '신세대 장병들 군기가 너무 빠졌다'는 비판이 일었다.

1990년대 군부대에서 한 사병이 일과 시간이 끝난 후 영내 공중전화로 외부에 전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국방부가 군기 확립을 위해 사병들의 삐삐는 물론 현금카드, 워크맨 등의 소지를 금지하고 모두 회수하기로 했다는 기사(경향신문 1996년 12월 6일 자).
1990년대 군부대에서 한 사병이 일과 시간이 끝난 후 영내 공중전화로 외부에 전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국방부가 군기 확립을 위해 사병들의 삐삐는 물론 현금카드, 워크맨 등의 소지를 금지하고 모두 회수하기로 했다는 기사(경향신문 1996년 12월 6일 자).
한 신문은 "경제성장과 함께 집에서 귀엽게 자란 신세대 장병들이 군대의 주축을 이루면서 병영 기강이 말이 아니다"며 보초 설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있는 일부 병사들 자세를 질타했다(경향신문 1996년 12월 6일 자). 그해 가을 국회의 국정감사 때도 병사들 기강이 논란이 됐다. 야당은 "삐삐 찬 군인은 군복 입은 민간인 아니냐"고 따졌다. 이 문제는 10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영수회담 테이블에도 올랐다.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병이 기합받으면 집에 전화하고, 어머니가 부대에 항의한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그런 일이 있느냐"고 말했다(동아일보 1996년 10월 8일 자). 결국 군 수뇌부는 11월 전군 병사들에게 삐삐 휴대 금지령을 내렸다. 가지고 있던 모든 삐삐도 회수했다. 12월 5일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서는 사병들의 현금카드, 워크맨까지도 '전력 약화의 요인'이라며 금지키로 했다.

1990년대 부대에는 공중전화라도 있었지만 1980년대엔 사병이 병영에서 밖으로 전화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가족 목소리라도 들어 보려면 외출·외박 때 공중전화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행정병 중엔 부대 사무실의 군용 전화로 가족과의 통화에 도전하는 일도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전방 부대의 어느 행정병은 군용전화로 서울의 육군본부 교환대에 접속한 뒤, 교환병에게 "어머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내 통화 한 번만 연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통사정한 끝에 통화했다. 그렇게 어렵게 연결됐건만, 병사는 어머니에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울먹이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늘날 병사들은 공중전화뿐 아니라 수신 전용의 공용 휴대폰도 쓸 수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일과 시간 이후 병사들이 개인 휴대폰을 쓸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올해부터 일부 부대에서 시범 운용한 후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사회와의 단절 최소화'와 '자율적 병영문화 조성'을 위해서라고 한다. 병사들의 갈채를 받을지 모르나 군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해 최선의 조치인지는 의문이다. 그간 휴대폰을 통해 부대 훈련 계획이 유출된 적도 있다. "군율이 너무 엄하면 병졸들이 위축되고, 너무 풀어주면 병졸이 교만해져 군기가 엉망이 된다"는 옛 병학서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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