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韓 특사는 中에선 下席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3.14 03:16

    작년 12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일본 총리를 예방했을 때 아베는 감색 바탕 꽃무늬 소파에 앉았다. 홍 대표에겐 높이도 낮고 무늬도 없는 소파를 내줬다. 누가 봐도 아베가 상석(上席)이었다. 13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特使)로 아베를 만났을 때는 둘 다 같은 소파에 앉았다. 한국서 일어난 논란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 특사에게 당연한 의전이었다.

    ▶주권국가 간 의전에서 상대국 정상의 말을 전하는 외교 특사는 정상급 예우를 받는 게 국제 관례다. 문 대통령 특사로 방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고 펜스 부통령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트 쪽 옆줄로 앉았다.

    ▶중국 5000년 역사에서 국가 외교 전담 부서가 만들어진 건 1861년에 이르러서다.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참패한 뒤에야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란 임시 교섭 기구를 설치했다. 그 전까지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평등한 관계에서 마주 앉아 본 적이 없었다. 의식(儀式)을 담당하던 예부가 조공(朝貢)을 바치던 주변국 관계를 관장했을 뿐이다.

    ▶작년 5월 문 대통령 특사로 방중한 이해찬 의원이 시진핑 주석을 면담할 때 중국은 전례 없는 자리 배치를 했다. 시 주석은 테이블 상석에 앉고 이 특사는 하석(下席)에서 시 주석 주재 회의에 참석한 모양새였다. 12일 정의용 특사가 시 주석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3년 김무성 대통령 특사는 시 주석과 동등한 자리였다. 작년 이후 중국이 한국 특사를 앉히는 자리는 홍콩 행정장관이나 지방관이 시 주석에게 보고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그런데 작년 5월 일본 특사는 시 주석과 대등하게 마주 보고 앉았고, 작년 10월 베트남과 라오스 특사도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았다. 한국 특사만 하석이다.

    ▶중국 전문가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니 계속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한국 특사 자리가 이렇게 어영부영 하석으로 굳어지는 건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황제급 권력을 거머쥔 시 주석은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 일부였다'는 한반도관을 가진 사람이다. 중국 선전 기관들은 주변국이 조공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인 '만방내조(萬邦來朝)'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제 자리와 위신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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