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장애인과 同情, 기다림

입력 2018.03.14 03:14

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김승재 스포츠부 기자

지난 9일 열린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장애인 아이스하키팀 주장 한민수(48)가 보여준 성화 봉송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왼쪽 다리에 의족(義足)을 한 그는 성화대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을 로프를 잡고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디뎠다. 그가 1분에 걸쳐 10여m 경사길을 올라가는 모습을 관중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한민수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누구도 그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말초신경 마비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이정민(34)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미국 대표팀과 합동 훈련하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숙소에서 같이 식사한 뒤 설거지를 맡은 건 휠체어를 탄 두 미국 선수였다. 비장애인 코치들은 쉬면서 다른 선수들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정민은 "장애인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도 한국에선 비장애인이 대신해주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럴 때마다 장애인들은 공동체에서 뭔가 배제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패럴림픽 개최 도시인 평창과 강릉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 개선에 공을 많이 들였다. 어느덧 이 두 도시는 장애인 접근성이란 측면에서 한국 최고 수준이 됐다. 하지만 세심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다.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은 일부 식당에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오면 직원들이 나와서 손님을 들어 의자에 앉힌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애인을 충분히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 처지에선 이런 상황에 불편함을 넘어 굴욕감을 느낀다.

이들은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지체장애인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언어장애인의 어눌한 말을 중간에 끊고 '그건 이런 의미지?' 하고 되물을 때도 참담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1988 서울 패럴림픽 때와 견줘보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30년 전만 해도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집 밖으로 나가기를 망설였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시선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애인은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평창에서 취재차 만난 장애인 선수와 관중이 비장애인들에게 바라는 건 동정(同情)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여럿이 나와 도와주기보다는 장애인 혼자 움직일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설치해 주기를 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열림 단추를 누르고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평창 패럴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나 방식이 한 단계 성숙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패럴림픽 레거시(legacy·유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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