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GUCCY' 가짜 만드는 명품, 왜?

입력 2018.03.14 06:00

짝퉁 매장 내고 가품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명품이 쿨해졌다
매력 없는 오리지널보다, 재미있는 가짜가 낫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이 짝퉁으로 유명한 뉴욕 커낼 가에 문을 연 ‘데이젤’ 팝업스토어, 인근의 짝퉁 매장처럼 허름한 매장 인테리어로 진품임을 감췄다./디젤 제공
“이건 진짜가 아니예요.”
“디젤이 맞아요.”
“D-E-I가 아니라 D-I-E라구요.”

뉴욕 브로드웨이 커낼 가의 작은 매장에서 점원과 손님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데이젤(DEISEL)’이란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가 진품인지 가품(假品)인지에 대해서다. 점원은 진짜라 우기고, 손님은 스마트폰으로 스펠링을 검색해가며 가짜라 반박한다. 결론은? 이 티셔츠는 진짜였다.

이 장면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이 배포한 영상 중 일부분이다. 디젤은 지난 2월 9일 짝퉁 골목으로 유명한 뉴욕 커낼가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옷에 가짜 상표를 붙인 뒤,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했다. 점원이 시종일관 ‘진짜 디젤’임을 강조했지만, 당연히 모조품이라고 생각한 고객들은 가격까지 깎아가며 물건을 구매했다. 이윽고 이 매장의 옷들이 가짜를 가장한 진짜 디젤임이 밝혀진 순간, 짝퉁을 산 고객들은 다신 볼 수 없는 한정판 진품의 주인공이 됐다. 중고시장에선 60달러에 판매된 데이젤 스웨트셔츠가 500달러에 판매됐다.

◇ 눈에는 눈, 패러디엔 패러디… 짝퉁 도용하는 명품

짝퉁에 대적하기 위한 묘수일까? 최근 패션계엔 진품이 위조상품을 도용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동안 진품이 디자인 도용에 대응해 온 방식은 법적 대응을 하거나 무시하는 것이었지만, 이젠 자신들을 표절하는 짝퉁을 다시 표절하는 역 표절로 맞선다.

짝퉁처럼 로고를 변형한 제품을 선보인 펜디(왼쪽)와 구찌/각 브랜드 제공
이탈리아 명품 펜디는 2018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펜디의 전통적인 ‘FF’ 로고를 변형시켰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의 상징적인 파랑·빨강 상표를 펜디 로고와 접목하거나 FFANCY, FFAMILY, FFABULOUS 등의 문구로 재해석한 옷과 가방을 선보였다. 구찌는 ‘구찌 고스트’라는 예명으로 구찌 가품을 만들던 아티스트 트러블 앤드루와 협업해 제대로 된 ‘가짜’를 만들었다. 2018 리조트 컬렉션에서는 GUCCI 로고를 변형해 GUCCY, GUCCIFY, GUCCIFICATION 등 짝퉁에서나 볼 법한 다양한 패러디 로고를 선보였다.

프랑스 명품 베트멍은 한국에 베트멍을 모방한 위조품이 범람하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공식 짝퉁(Official Fake)’을 만들어 판매한 바 있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한 창고에서 판매를 했는데 레인코트가 12분 만에, 후드 티셔츠가 1시간 만에 품절되는 등 순식간에 준비된 1000여개 상품이 동났다.

명품의 이런 접근 방식은 법정 공방보다 훨씬 쿨해 보인다. 사실 패러디는 브랜드의 맥락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유머다. 진짜를 만드는 사람이나 위조하는 사람이나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실제로 베트멍의 패러디 브랜드 베트밈을 운영하는 데빌 트랜은 “나는 뎀나 바잘리아(베트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팬이다. 그와 그가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라고 밝혔다.이에 뎀나는 “베트밈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 데빌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트멍(Vetements)의 패러디 브랜드 베트밈(vetememes)의 레인코트를 입은 젊은이들/vetememes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최근의 추세도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지난해 루이비통은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루이비통은 7년 전 모노그램 로고를 데크(스케이트 보드 판)에 도용한 슈프림을 고소한 적이 있다. 발렌시아가는 1000원짜리 이케아 쇼핑백을 본뜬 수백만원짜리 가방으로 화제를 모았다.

◇ 매력 없는 진짜보다 의식 있는 가짜가 낫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오리지널을 부정하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이라 분석했다. “오리지널이란 먼저 시작해 먼저 자리를 잡고, 먼저 견고한 성을 쌓은 이들의 권력인데, 밀레니얼 세대는 이를 부정한다. 기성세대의 유산을 물려받기보다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한다.” 명품 입장에선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기보다 패러디하는 게 주류 소비세력인 밀레니얼 세대에 접근하기 유리하다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티파니는 뉴욕패션위크에 여우 털 코트를 입고 참석해 네티즌들로부터 악플 세례를 받았다. 2~3년 전만 해도 모피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이젠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제 동물 털(진짜)보다 인조모피(가짜)를 입는 게 더 의식 있고 세련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아르마니, 랄프로렌, 구찌 등 많은 명품이 동물 모피 사용을 중단했으며, 온라인 명품 쇼핑몰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 등 주요 유통 업체들도 더 이상 동물 모피를 판매하지 않는다.

라코스테는 ‘악어’ 대신 멸종위기 동물을 가슴에 새긴 한정판 피케 셔츠를 출시했다./라코스테 제공
의식의 표현을 위해 브랜드 로고를 과감히 포기하기도 한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는 브랜드의 상징인 ‘악어’ 대신 열 종의 멸종위기 동물 자수를 넣은 한정판 피케 셔츠를 출시했다. 총 1775장이 출시된 피케 셔츠는 출시되자마자 품절이 됐다.

김용섭 소장은 “무엇이 진짜냐 가짜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무엇이 더 가치 있고 멋진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를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다. 아무리 오래되고 명성 있는 오리지널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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