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의 민간 소방수 "불 나면 5분 내 달려가죠"

입력 2018.03.13 03:32

화재 현장 물 공급 돕는 양근식씨, 수천만원 들여 소방차 2대 구입
지인 화재 피해 보고 심각성 느껴… 진천署와 협정, 화재땐 함께 출동

지난해 5월 1일 오후 2시. 충북 진천에서 고추씨 기름 생산 업체를 운영하는 양근식(63) 금수실업 대표는 회사로 돌아오던 중 산 너머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진천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화재 장소를 알아낸 그는 회사에 주차돼 있던 소방차에 올라 15분 거리의 비닐 가공 공장으로 향했다. 2600L 용량의 물탱크에 용수를 가득 채운 상태였다.

최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양씨는 "당시 화재 현장으로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시속 60㎞ 제한 도로를 80㎞ 넘게 밟았다. 일주일 뒤 과속 딱지가 날아왔는데, 그제서야 '내가 정신이 없긴 했구나' 싶었다"고 했다.

양근식 금수실업 대표가 충북 진천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 소방 용수 살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소방차 2대를 회사에 갖추고 화재 발생 시 출동한다.
양근식 금수실업 대표가 충북 진천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 소방 용수 살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소방차 2대를 회사에 갖추고 화재 발생 시 출동한다. /이진한 기자
당시 화재는 불이 폐비닐에 옮아붙어 진천군 관내 소방차 17대가 총출동했는데도 2~3시간 동안 불길을 잡지 못했다. 양씨는 자신의 소방펌프차 호스를 현장에 있던 소방차에 연결해 물을 공급했다. 그는 인근 덕산119안전센터와 소화전을 7~8번 오가며 소방용수를 실어 날랐다. 그는 "큰 화재일수록 용수를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진압 현장을 돌아다니느라 셔츠까지 찢어졌지만 누구보다 뿌듯했다"고 했다.

양씨는 자신의 회사에 5t짜리 중고 소방펌프차 2대를 갖추고 불이 나면 화재 현장에 달려가는 '민간 소방수'다. 그는 "2005년 인근에 있던 지인(知人)의 도시락·라면 용기 공장에 큰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잿더미가 된 것을 보고 자체 소방차를 갖추었다"고 했다. 그는 "불이 나고 초기 5분이 골든 타임"이라며 "언제 어디서 그런 사고가 또 날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컸다"고 했다. 그는 대당 1500만원짜리 중고 소방차를 2대 구입했다. 경광등(警光燈)과 무전기를 다시 설치하고 노후된 소방 밸브 등 부속품을 교체하는 데 대당 3000만원이 들었다. 차량 보험료와 유지비로 해마다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양씨는 직원들과 함께 진천소방서를 찾아 소방차 간 호스 연결법, 비상소화장치 사용법 등을 배우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소방차에 방화복과 방화모를 비치했다. 그는 "화재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물탱크에 항상 물을 채워놓고 있다"며 "여름철 가뭄이 극심할 때는 마른 논에 물을 뿌리고 인근 도로 물청소를 돕기도 한다"고 했다.

2013년 2월에는 진천소방서와 협정을 맺고, 화재가 발생하면 즉각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는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되는 대로 스마트폰에 신고 내역이 자동 전송된다"며 "지난해에만 관내 화재 현장을 일곱 차례 찾아 소방 용수를 공급했다"고 했다. 서정교 진천소방서 대응구조구급팀장은 "시내에는 100m 간격으로 소화전이 있는 반면, 외곽에는 소화전이 부족해 용수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 화재 진압에는 불길이 번지기 전 살수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관건인데, 양씨가 싣고 온 물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양씨는 "소방차 핸들만 잡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긴장된다. 불이 난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화재를 대비하는 게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고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