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공문조작 확인되자 관저 앞에 나와 "국민께 깊이 사과"

입력 2018.03.13 03:22

[日재무성, 사학스캔들 공문 14건 조작 시인… "아베 최악의 위기"]

"아키에 여사가 잘 해보라했다"
사학재단 이사장의 발언과 아키에 사진 언급된 부분 삭제
아베·아소 잇따라 사과했지만 둘다 '내 밑에서 한 일' 선 그어

12일 오후 4시 56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총리관저 로비에 섰다. 일본 재무성이 아베 총리 부부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을 덮기 위해 공문서 14건을 조작했다고 인정한 지 반나절 뒤였다.

아베 총리는 "행정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 뒤 1~2초 침묵하고,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또 잠깐 침묵했다. 그는 "국민들의 매서운 눈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사건 전모를 해명하는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집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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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오후 총리관저에 모여든 취재진 앞에서 ‘사학 스캔들’ 관련 공문서 조작에 대해 “행정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재무성이 ‘사학 스캔들’ 관련 공문 조작사실을 인정한 지 반나절 만이다. /AFP 연합뉴스
일본 재무성은 이날 오전 80쪽짜리 자체 조사 보고서를 일본 국회에 냈다. 작년 2월 사학 스캔들이 불거진 뒤, 재무성이 관련 공문 14건에서 아베 총리 부부가 관련된 기록 310곳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언론은 "전례 없는 사태"라면서 "아베 정권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보도했다. 재무성은 '아베 정권 2인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이끌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소가 사임할 경우, 올해 9월 자민당 총재 3선에 도전하려던 아베 총리의 구상도 (실현이) 불투명해진다"고 분석했다.

사학 스캔들이란 아베 총리 부부를 포함해 권력 핵심이 깊숙이 개입한 권력형 특혜 시비다. 2015년 9월 모리토모 학원이라는 극우 사학법인 이사장이 "일본인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를 세우겠다"면서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를 명예교장으로 위촉하고, 이듬해 6월 재무성이 보유한 국유지(9492㎡·약 2800평)를 1억3400만엔에 사들였다.

문제는 이 땅이 시가 9억5600만엔짜리였다는 점이다. 과거 다른 학교가 7억엔에 사겠다고 했다가 재무성이 "그 값엔 못 판다"고 해 포기한 적도 있다. 재무성은 처음에 가격을 함구했다. 수상쩍게 여긴 아사히신문이 내막을 취재해 작년 2월 첫 보도했다. 이후 권력 핵심이 힘을 쓴 정황이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아내가 관여한 게 사실이면 사퇴하겠다"고 펄쩍 뛰었다. 국회에 불려나온 재무성 공무원들도 "원래 쓰레기 매립지였던 땅이라 복구 비용을 제하고 팔았을 뿐"이라고 총리와 입을 맞췄다.

아베 총리는 이 사건으로 작년 한때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했지만, 10월 총선에 승리해 고비를 넘겼다. 사학 스캔들도 불씨가 꺼져가는 듯했다. 아사히신문 기사가 그런 흐름을 한 방에 역전시켰다. 아사히는 지난 2일 "재무성이 국유지 매각 당시 작성한 공문과 그 뒤 국회에 낸 공문이 서로 다르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온 지 닷새 뒤인 7일, 재무성 실무자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시 이틀 뒤인 9일에는 국유지 매각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으로 관련 실무를 총괄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국세청장이 사임했다. 야당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며 국회 보이콧에 들어갔다. 자민당 내에서도 "이대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재무성이 결국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이날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한마디로 '공문을 조작한 게 맞는다'는 내용이다. 사학 스캔들이 터진 직후인 작년 2~4월 사이, 재무성 관리들이 권력 핵심의 개입을 기록한 부분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총 14건의 공문에 손을 댔다는 게 골자다. 모리토모 측이 재무성과의 회의에서 "아키에 여사가 '좋은 땅이니 잘 진행해보라'고 했다"고 말한 대목과, 아키에 여사와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이 함께 찍은 사진을 제시했다는 대목이 문서에서 사라졌다.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은 일본회의 회원"이라는 대목도 없어졌다. 일본회의는 아베 총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거대 우익 단체다. 요미우리신문은 "재무성 관리들이 (모리토모 학원에 특혜를 준 적 없다는) 사가와 청장의 국회 답변과 맞아떨어지도록 공문을 고쳐 쓴 것 같다"고 보도했다.

남은 의문은 '누가 지시했느냐'다. 자민당 안에서 "최소한 아소는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아소 부총리 자신은 "수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면서도 "퇴진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계는 '아베 정권이 어디서 꼬리를 자르려 할 것인가'에 촉각을 세웠다. 이날 오후, 정권 1인자인 아베 총리와 2인자인 아소 부총리가 3시간 간격을 두고 잇달아 대국민 사죄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아소 부총리가 확실히 설명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아소 부총리는 "재무성 관리들이 한 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아니라 내 밑에서 한 일'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야당은 "일단 아키에 여사부터 국회에 불러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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