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 제사터 등 용산기지 곳곳에 문화유산

조선일보
  • 백수진 기자
    입력 2018.03.13 03:21

    [밑그림도 없는 용산공원] [上] 전문가 "보존대책 먼저 세워야"

    용산 미군 기지는 굴곡진 근·현대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주한 미군은 130여 동에 달하는 일본군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왔다. 국토부는 이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80여 동을 철거하지 않고 남길 방침이다. 지난해에는 문화재청이 기지 내 기념물 55점을 평택 기지로 반출하겠다는 미군 측 요청을 승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용산공원 조성 전에 기지 내의 문화재를 조사하고 우리 역사의 일부인 문화재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용산 기지는 북쪽의 메인 포스트와 남쪽의 사우스 포스트로 나뉜다. 메인 포스트 북쪽 외곽에는 캠프 코이너가 있고 그 동쪽에 둔지산이 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선 이곳에 제사를 지내는 남단을 지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당시에 썼던 돌기둥과 주춧돌로 추정되는 큰 석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쓰던 막사를 그대로 쓰고 있는 미8군 병영 건물. 일본군 상징인 별 모양이 남아 있다(점선 안).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쓰던 막사를 그대로 쓰고 있는 미8군 병영 건물. 일본군 상징인 별 모양이 남아 있다(점선 안). /박종인 기자
    메인 포스트 북동쪽에는 일제 강점기 헌병대 감옥이었던 '위수 감옥'이 있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이 감옥에 갇혀 있다가 재판을 받았다. 김수영 시인도 6·25 전쟁 초반에 이곳에 잠시 수감됐다. 현재까지도 감옥 담장과 당시에 만들어진 건물 2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감옥의 붉은 벽돌 담장에는 6·25 때 생긴 총탄 흔적을 볼 수 있다. 남동쪽에 있는 미8군 병영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쓰던 막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관 입구 지붕 아래에는 일본군 상징인 별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메인 포스트와 사우스 포스트를 양분하는 위치에 한미연합사 건물이 있다. 연합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큰 건물은 1946년 한국 신탁통치안을 논의하는 미·소 공동위원회 소련 측 숙소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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