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 25년… 北, 선물만 챙기고 검증단계서 매번 합의 뒤집어

조선일보
  • 박수찬 기자
    입력 2018.03.13 03:03

    [한반도 '격동의 봄']

    北, 1993년 NPT 탈퇴 선언 뒤 중유 지원 받고 잔류 했지만 2003년 사찰 요구 받자 탈퇴
    2005년 핵무기 포기 '9·19 합의', 다음해 1차 핵실험하며 약속 깨
    전문가 "정상회담 낙관 안돼"

    12일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북핵 위기'가 시작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수차례 비핵화를 공언했지만 '검증' 단계에서 협상 폐기를 반복했다. 1993년 NPT 탈퇴 선언은 그 시작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한·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신중론이 나온다.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핵무기를 제조·보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1년 12월에는 남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핵무기는 물론 핵농축, 재처리 시설을 갖지 않는다고 약속한다. 김일성 주석도 미국 하원 의원을 만나 핵 개발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밝혔다. 이른바 '비핵화 유훈'이다.

    하지만 1993년 IAEA가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에 의문을 제기하며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 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그해 3월 12일 NPT 탈퇴를 선언한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시설 타격까지 검토했지만 협상론이 힘을 얻어 1994년 10월 21일 미국과 북한은 북핵 동결과 NPT 잔류 등을 대가로 경수로, 중유를 지원하는 '제네바 합의'를 발표한다.

    이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2003년 NPT를 탈퇴하면서 파기됐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운영해 핵 동결 약속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IAEA 등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은 당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부인했지만 2010년 영변의 농축 시설을 미국에 공개했다.

    국제사회는 이 2차 북핵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2003년 6자 회담을 시작했고 2005년 '9·19 합의'를 타결한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전력 등 에너지를 북한에 지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약속도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고 한국과 미국이 요구한 조사를 거부하면서 파기된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에 열린 후 중단됐다.

    미국과 북한의 '마지막 거래'는 2012년 '2·29 합의'다.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가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이 그해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합의도 파기됐다. 북한은 같은 달 헌법 전문(前文)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파격에도 지난 25년의 과정을 볼 때 실제 북핵 협상 테이블에 어떤 의제와 조건이 오를지 분명해지기 전까지는 낙관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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