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사람의 명확한 동의 없으면 '위력 간음'

입력 2018.03.13 03:03 | 수정 2018.03.13 15:19

['미투' 법률 Q&A]

Q.아랫사람의 동의 어떻게 판단?
A.사건전후 메시지 등 종합 판단
만나고 싶다 등 호감 표했다면 위력에 의한 관계로 보지 않아

Q.성범죄 폭로 명예훼손 되나?
A.공익성 크다면 처벌 안돼… 유명인의 성범죄 폭로는 특히 면책 가능성 높아

Q.'격려차원'이란 말 어떻게 보나
A.여러명에 수차례 했다면 추행, 가해자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받는 느낌이 중요

'미투 운동'은 문화·정치·법조·교육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기관으로 퍼지면서 누구든 폭로자나 가해자로 '미투 운동'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사안을 들여다보면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 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뜻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미투 운동'의 순수성과 동력이 훼손되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미투 운동'과 관련된 법률적 궁금증을 풀어봤다.

―상사와 부하 간 성관계는 어떤 경우 '위력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나?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은 상하가 뚜렷한 관계에서 상급자가 지위를 이용한 경우에 적용된다. 여기서 '위력'은 피해자가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힘인데,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강간과 달리 폭행·협박이 없어도 적용된다. 상급자가 '이러면(거부하면)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거나 다른 불이익을 줄 것처럼 하면서 성관계를 맺었으면 지위를 이용해 위력으로 간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급자가 확실한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게 아니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 두 사람이 연애 감정으로 관계를 한 게 아니라 상급자의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이뤄진 관계라면 '위력에 의한 간음'에 해당한다.

/그래픽=이철원 기자
―둘이 좋아서 관계가 이뤄졌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확인하나?

"법원은 사건 전후에 오간 문자메시지, 두 사람 행적, 주변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여성 하급자가 관계 직후 남성에게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 '어제저녁 식당이 좋았다' 등 분명한 호감을 표하는 문자를 보냈다면 '위력에 의한 관계'로 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관계 후에도 수영장·노래방·음식점 등을 며칠 동안 단둘이 다녔던 점이 드러나 강간죄 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있었다."

―명확한 상하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호텔로 데려갔다. 여성은 성관계에 대한 동의 또는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폭행·협박은 없었다. 이 경우에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처벌되나?

"여성이 명확하게 거부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을 해고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차마 노(no)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위력으로 인정될 수 있다.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려면 '둘이 좋아서 이뤄진 관계'임을 증명해야 한다. 문자메시지나 사건 후 행적 같은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나?

"형법(307조 1항)에 따르면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폭로로 인한 공익성이 크다고 보면 처벌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유명인의 성폭력 폭로는 면책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하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한 것은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 외에 증거는 없다. 폭로 후 무고(誣告)로 처벌받을 수 있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거짓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증거가 있어야 무고죄가 된다. 한 유명 가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이 있었다. 이 가수의 성폭행이 무혐의로 판명 난 후 검찰은 여성을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은 이 여성이 사건 직후 주변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던 점을 고려해 '허위 고소'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신체 접촉은 안 하지만, 상습적으로 여성의 특정 부위를 오랫동안 노려보는 남자 직원이 있다. 처벌 가능한가?

"'추행'은 신체 접촉이 있어야 한다. 여성을 쳐다보거나 성적 농담을 하는 것만으로는 처벌이 안 된다. 하지만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기 때문에 징계나 민사상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는 있다. 다만 이걸 증명하려면 다수 피해자의 증언이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격려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최근 부하 직원들을 격려한다며 손바닥으로 어깨를 주무르거나 볼을 꼬집은 사건에서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이 청구된 사건이 있었다. 1회면 몰라도 이런 행동을 여러 명에게 수차례 반복했다면 문제가 된다. 추행 판단에는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받는 느낌이 중요하다."

―성폭력 공소시효(10년) 이전 사건도 고발해 처벌할 수 있나?

"10년 이내 일이라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된 2013년 6월 19일 이전 행위는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피해자가 사건일로부터 1년 내에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10년 이전 일이어도 '상습 강제 추행'에 해당하면 처벌이 가능하다. 상습적으로 이뤄진 여러 차례 추행 중 한 번이라도 공소시효 이내에 있으면 그 이전 행위까지 모아서 처벌된다. 이 경우 친고죄에 해당하지 않아 고소 기간 제한에도 걸리지 않는다. 경찰이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이윤택씨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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