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꼴찌라도… 내가 당신의 금메달"

입력 2018.03.13 03:03

[2018 평창 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상지장애 박항승, 하지장애까지 무릅쓰고 출전
아내 권주리씨 "메달 못따면 어때? 오늘 당신 정말 멋있었어!"

남자는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하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눈을 탔다. 길이 925m의 슬로프 끝 관중석엔 목청껏 그를 응원하는 아내가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다. "정말 잘했어." "아니야, 잘 못했는걸…" 그녀가 다시 답했다. "괜찮아. 당신 멋있었어!" 둘은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었다.

박항승(31)은 12일 평창 동계패럴림픽 남자 스노보드 크로스(SB-UL·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출전자 22명 중 최하위(1분50초74)를 기록했다. 그는 두 차례 예선에서 모두 경기 초반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평소 약점으로 꼽혔던 곡선 주행에서 나온 실수였다. 1차 예선에선 기문까지 밟으며 실격됐지만, 2차 땐 차분히 완주에 성공했다.

박항승(위 사진 왼쪽)이 12일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 2차 예선을 마친 뒤 아내 권주리씨와 함께 환하게 웃는 장면. 아래 그림은 권씨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응원 현수막. ‘항상 너에게 승리를 주리’(줄여서 항승주리)란 글이 새겨져 있다.
박항승(위 사진 왼쪽)이 12일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 2차 예선을 마친 뒤 아내 권주리씨와 함께 환하게 웃는 장면. 아래 그림은 권씨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응원 현수막. ‘항상 너에게 승리를 주리’(줄여서 항승주리)란 글이 새겨져 있다. /김지호 기자

박항승은 이날 상지 장애(UL) 선수가 출전하는 종목에 나섰다. 오른팔이 없고, 오른 다리에 의족까지 착용해 '상지-하지' 모두 장애를 가진 그로선 불리할 수밖에 없는 도전이었다. 스노보드는 이번 패럴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아직 장애 정도에 따라 종목 세분화가 덜 이뤄졌다. 박항승을 위한 종목은 사실 없었던 셈이다. 경쟁자보다 열악한 조건의 그가 가장 늦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박항승은 네 살 때 교통사고로 1급 지체 장애를 안았다. 운동보다 실내 활동을 좋아했던 그가 '스노보드 선수'로 변신한 건 연극배우인 아내 권주리(31)씨를 만나면서다. 두 사람은 2011년 친구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장애가 있으면서도 자신감에 넘치는 박항승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스노보드광이었던 아내를 따라 박항승은 자연스럽게 보드를 접했다. 처음엔 불편한 팔다리로 중심 잡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오기가 생겨 더 끈질기게 연습했다.

박항승과 아내 권주리씨가 2015년 용평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모습.
박항승과 아내 권주리씨가 2015년 용평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모습. /박항승 제공

장애인 특수학교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2015년 대표선수가 된 박항승에게 아내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권씨는 "남편이 선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많이 망설였지만, 한 번뿐인 삶을 맘껏 즐기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노보드 부부'답게 두 사람은 2015년 2월 용평리조트 스키장에서 웨딩 촬영을 했고,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박항승은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하루 9시간 강훈련을 소화했다. 의족을 댄 무릎에 피가 날 정도로 보드를 탈 때도 꿈과 아내를 생각하며 버텼다. 박항승은 "외국 훈련과 대회가 잦아 떨어져 지낸 적이 많았는데 그게 미안해서 잠을 설쳐가면서도 자주 전화를 했다"며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아내의 응원을 듣고 다시 일어섰다"고 말했다.

권씨는 남편이 첫 패럴림픽에 도전한 이날 특별한 응원 도구를 준비했다. '항상 너에게 승리를 주리'(줄여서 항승주리)란 글이 새겨진 현수막,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금메달 모형이었다. 권씨가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 인생 최고의 금메달 아냐? 꼭 메달 안 따도 돼!" "당연하지. 그런데… 패럴림픽 메달도 따고 싶어(웃음)" '승리 부부'는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박항승은 16일 주종목인 뱅크드 슬라럼에서 다시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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