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인간보다도 일찍 부상병을 돌보고 있는 개미들

입력 2018.03.13 03:14

다친 동료 구하는 아프리카 개미, 적에게 다리 잃으면 집으로 後送
버려진 부상 개미는 80%가 죽지만 집으로 데려가면 致死率 10% 그쳐
부상 부위 핥아 항생제 바르는 듯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총을 들지 않았음에도 미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은 이가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 전투 현장에서 전우 75명을 구한 데즈먼드 도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분노해 자원입대했지만 종교적 신념으로 총을 들기를 거부했다. 대신 의무병으로 참전을 허락받아 목숨을 걸고 부상당한 전우들을 구함으로써 전쟁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도스의 얘기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핵소고지'에 잘 그려졌다. 도스가 부상병을 구한 곳은 마치 쇠톱(hacksaw)으로 잘라낸 듯한 절벽을 가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영화에서 도스가 매일 "한 명만 더 구하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하던 간절한 바람과 "내가 집으로 꼭 가게 해줄게"라고 동료에게 희망을 주던 말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줬다.

최근 독일 과학자들이 자연에서도 '핵소고지'와 같은 장면이 매일 벌어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흔한 개미였다. 뷔르츠부르크대학 연구진은 개미들도 전투 현장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버리지 않고 집으로 데려가며, 심지어 극진한 치료까지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서부 코트디부아르의 코모에 국립공원에서 3년간 '아프리카 마타벨레 개미(African Matabele ant)'를 관찰했다. 마타벨레는 아프리카에서 용맹하기로 이름난 은데벨레족(族)을 유럽인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이 개미는 오직 흰개미만 먹고 산다. 매일 2~4차례 200~600마리가 무리 지어 흰개미 굴을 공격해 먹잇감을 물어온다. 그만큼 전투력이 뛰어나다.

전투가 일어나면 부상병(兵)이 생기기 마련이다. 병정 흰개미에게 물려 다리가 잘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개미들이 허다하게 발생했다. 원정에 나선 개미의 3분의 1이 다리 하나 이상을 잃었다. 일반적으로 개미 사회에서는 병에 걸리거나 불구가 되면 굴 밖으로 내버려진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다른 개미까지 병원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런데 마타벨레 개미는 달랐다.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개미들이 부상당한 동료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부상 개미가 나중에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사냥에 나서는 모습도 발견됐다.

이번에는 개미굴로 돌아간 부상병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6개 개미 군집을 실험실의 인공 개미굴로 옮겼다. 2㎝ 남짓한 작은 개미의 등에 각각 다르게 색을 칠하고 카메라로 관찰했다. 개미들은 집으로 돌아온 부상병의 상처 부위를 정성스럽게 핥았다.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상처 부위를 씻어내는 행동인지, 아니면 항생물질을 바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치료 효과는 확실했다"고 밝혔다. 치료를 받지 못한 부상 개미는 80%가 24시간 내 죽었지만, 치료를 받은 개미의 치사율은 10%에 그쳤다.

개미의 놀라운 치료 효과는 탁월한 부상병 분류 시스템도 한몫했을 것이다. 의무병 개미들은 힘들게나마 서 있을 수 있는 부상 개미에게만 다가왔다. 동료가 구조하러 오면 부상 개미는 다리를 오므려 후송 작업이 용이하도록 도왔다. 반면 다리가 너무 많이 잘려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동료가 와도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면 그냥 두고 갔다. 처음부터 살릴 수 있는 개미만 데려간 셈이다.

인간 사회가 그와 같은 부상자 분류를 도입한 지는 200년 남짓하다. 야전병원에서 쓰이는 부상자 분류법인 '트리아지(triage)'는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군의관이었던 도미니크 장 라리가 처음 고안했다. 그는 한정된 인력으로 부상병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부상병을 '회복이 불가능한 부상자'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는 부상자' '치료를 받지 않아도 회복될 수 있는 부상자'로 구분했다.

그전에는 오로지 부상자의 계급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가 결정됐다. 트리아지는 분류를 뜻하는 프랑스어 '트리에르(trier)'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상인들이 커피콩을 품질에 따라 분류하던 것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물론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가 내뿜은 화학 신호인 페로몬에 기계적으로 반응할 뿐이지 인간처럼 동료의 고통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오랜 진화 끝에 부상 개미를 치료하는 것이 원정에 나설 개미를 새로 키우는 것보다 훨씬 에너지가 덜 든다는 사실을 터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미가 인간보다 훨씬 먼저 사회를 이뤘고, 지금까지 개체 수나 서식지로 봐도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도스' 개미들이 동료를 한 마리라도 더 구하려 애썼을지 모른다. 발아래 개미도 다시 볼 일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