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앵그리 관료' 느는 까닭

입력 2018.03.13 03:15

김태근 경제부 차장
김태근 경제부 차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 관료들 사이에선 실세(實勢)에 선(線)을 대고, 이런저런 보고서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정권 초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에 따라 이후 5년간 관료 사회의 인사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직을 꿰찬 공무원들은 윗전을 신뢰하고 그 대리인을 자처한다.

어느 정부에서나 정권 실세와 관료들의 공생 관계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15년 넘게 정부 부처를 취재하면서 재빠르게 변신하는 관료들을 수없이 봤고 지금도 주변에 많다. '영혼이 없다'는 비판도 받지만,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에서 관료들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된 요즘 관료들이 과거에는 삼가던 언행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늘고 있다. 청와대 실세 옆에 자리를 잡은 관료는 최근 "아무 데나 좋으니 외국 파견이나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선거 캠프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행태가 지나치다"고 했다.

굵직한 경제 관련 대책 발표에 관여하는 국장급 인사는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청와대가 평가조차 안 해주니 서운하다"고 토로했다. 2~3년 전 만났을 땐 "요즘 사무관들은 사명감이 없다"며 언성을 높이던 40대 중반의 과장급 간부는 "일해봐야 뭐하냐. 모 선배가 청와대에 보고하러 갔더니 면전에서 '저 사람들 얘기 듣지 말라'는 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 부처와 자주 만나는 대기업 임원들은 요즘 "어디 자리 없느냐"고 묻는 관료들이 많아 놀란다고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예전 같으면 옷 벗는 걸 생각도 안 하던 엘리트 관료 중에도 마음은 이미 떠난 이가 여럿"이라고 했다. 관료 출신인 다른 대기업 임원은 "공무원을 그만둘 때는 잘될 거라 위로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부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왜 이럴까? 열에 예닐곱은 '실세들의 노골적인 공무원 불신(不信)'에 불만을 토로한다. 한 전직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는 정권의 이상론과 관료의 현실론이 정책의 균형을 잡았다. 그런데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그때 공무원들에게 속았다고 한다"고 했다. 다른 현직 관료는 "시민단체, 학자 출신들이 실권을 잡고 행정 현실에 밝은 공무원들 얘기는 무시하니 최저임금 같은 사고가 터진 것"이라며 "문제는 그래도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어느 정권이나 구습을 버리고 개혁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국가 운영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행정 시스템을 떠받치는 관료까지 밀어내는 건 어리석다. 국민 세금으로 돌아가는 관료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정권의 무능(無能)만 증폭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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