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황제 개헌, '시코노믹스' 갈림길....백가쟁명 실종, 中 혁신대국 될수 있나

입력 2018.03.12 16:16

견제 받지 않는 1인체제, 기득권 저항-장기개혁 가속...감찰위 설립 권력강화 뒷받침
개인숭배 분위기 ‘다른 생각’ 불허 VS 사상자유 기반 혁신강국 추구 모순 커질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3기 전인대 3차 전체회의에서 열린 개헌안 표결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전인대가 이날 압도적 다수로 개헌안을 통과시키면서 시 주석은 장기 집권을 향한 길을 열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인민들의 마음입니다.”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서 국가주석의 임기제한 규정을 삭제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중국 관영 CCTV와 인터뷰한 한 전인대 대표는 2964표 가운데 반대가 2표에 그친 표결 결과가 나온 뒤 투표현장에서 박수가 쏟아진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이날 CCTV의 메인뉴스인 저녁 7시 신원롄보(新聞聯播)는 남부 푸젠성 시민에서부터 중국 철도공사 엔지니어 등 중국 전역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개헌에 대한 기대감을 내보냈다. 선춘야오(沈春耀) 전인대 법제업무위원회 주임은 개헌 통과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사상이 헌법에 들어간 건 인민의 공동염원”이라며 장기집권 보장과 관련, “당과 국가의 장기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당기관지 인민일보도 사설을 내고 개헌이 민족 부흥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사실상 만장일치에 가까운 투표 찬성률 99.8%에 부합되는 모습이다. 14억 인구의 나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고향이었던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사불란함이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등에 등장한 장기집권 허용 개헌에 대한 반대목소리는 검열에 막혀 속속 삭제됐다. 중국청년보의 개헌 통과 기사 댓글에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의견이 달렸지만 얼마 후 삭제됐고, 대부분 관련 기사에 댓글을 볼 수도 추가할 수도 없게 됐다.

BBC와 인터뷰한 홍콩의 정치평론가 린허리(林和立)는 “이번 개헌은 시진핑이 스스로 만들고, 이끌고, 연기를 한 쇼”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명의 지도자에 권력을 집중하는 건 덩샤오핑(鄧小平)의 집단지도 체제를 허물고,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 봉건주의 왕조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과거 5년 시진핑 집권 1기의 ‘경제 치적’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난 2일 극장에서 개봉한데 이어 TV에서도 방영되는 등 시 주석 띄우기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인대 개막을 앞두고 '인민의 영수(領袖)'라는 제목의 특집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영수는 마오쩌둥에게 붙여졌던 호칭이다.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개인숭배 금지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고, 시 주석이 지난 10일 충칭시 인대 대표단 회의에 참석, 인치(人治)를 반대한다고 강조한 것과 맞지 않는 모습이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과 같은 개인숭배 체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되면서 개혁 개방 40년을 이끌어온 정책 결정체제의 변화가 예고된다. 관심은 1인 권력의 장기집권이 지난해 세계 경제 성장의 30% 이상을 책임진 중국 경제의 향방에 미칠 영향이다. 기득권의 저항을 받는 장기 개혁을 밀어부칠 파워를 얻게됐다는 긍정론과 당의 시장 개입이 강화될 것이라는 부정론이 엇갈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주의 강화를 틈타 국제 외교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 외교의 강성기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인대는 이날부터 개헌안이 시행된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의 장기집권 시대를 연 개헌이 만들어낸 새로운 중국의 통치시스템은 자국 내부 뿐 아니라 세계 경제와 정치외교에도 도전으로 다가온다.

◇ 백가쟁명 누르는 중국 VS 혁신 강국

개헌안 통과가 발표된 직후 중국 지인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 ‘개헌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러워할 일’이라는 코멘트를 올렸다. 이번 개헌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 1년을 소요하며 학자들의 의견을 들은 2004년 개헌과는 달리 작년 9월 시 주석이 주재한 정치국회의에서 제안한 지 5개월만에 속전 속결로 처리됐다.

1월 18~19일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2차 회의(19기 2중전회)에서 통과된 개헌건의문이 한달여가 지난 2월 25일에서야 공개되고, 이후 한달도 안돼 처리된 것은 예상치 못한 반대 목소리가 번질 기회를 차단하겠다는 다급함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헌 표결 형식을 앉은 자리에서 기표하고 투표용지를 접지도 않고 투표함까지 직접 들고 가서 넣는 식으로 한 게, 반대표 억제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산당원 뿐 아니라 비당원 공무원과 국유기업 관계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국가감찰위원회 설립 근거를 헌법에 마련하는 등 더 강해진 반부패 칼날도 반대 목소리 억제 효과를 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의 스티브 창 소장은 반대 표가 적은 것을 두고 시 주석이 존경받고 사랑받는다는 것보다는 정치인들이 시 주석을 무서워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번 개헌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삽입된 것을 비롯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인류 운명공동체’ ‘현대화 강국’ 등 시 주석의 구호들이 대거 추가됐다. ‘국가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이끌어야 한다’는 구절도 넣어 이념 통제를 강화하는 시 주석의 통치 스타일을 확인시켰다.

시 주석에 비유되는 곰돌이 푸(디즈니 영화 캐릭터)는 당초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검색에서 차단됐다가 풀리긴 했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으니 붙들고 있어야지’라는 자막이 들어가 있는 꿀단지를 안고 있는 사진은 권력을 탐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여전히 찾을 수 없다. 시 주석의 장기집권 가능 개헌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주로 중화권 매체나 서방미디어 등을 통해서 전해질 뿐이다.

이런 ‘반대의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행보는 ‘2035년까지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크게 키워 혁신형 국가의 앞자리를 차지하겠다”(시진핑 주석)는 목표와 충돌할 수 있다. 중국 정치 전문가인 패트리샤 돌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번 역사적인 투표에서 극단적으로 적은 반대와 기권표는 중국공산당 고위층 내에서도 논쟁은 물론 복수 의견에 대한 억압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 검열은 기존의 틀을 깨야 하는 혁신의 장애물이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방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널드 코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중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결함은 바로 사상시장의 결핍”이라며 "개방과 자유가 부여된 사상시장이 잘못된 사상과 사악한 신념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사상을 억제하는 건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사상의 자유가 혁신을 이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중국은 올해 정부업무보고의 첫 번째 업무로 신흥산업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를 꼽을 만큼 혁신을 갈구한다.

◇ 지방분권의 창의성 VS 중앙집권의 효율성

미국 캐나다 등 해외의 중국 유학생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낫 마이 프레지던트#NotMyPresident 내 주석 아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학에 올라온 캠페인 포스터/트위터
마살 마이어 미국 와튼스쿨 교수는 “덩샤오핑의 모토는 각 지방정부가 각자 길을 가도록 하고 승자는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권력 분산을 통해 경제가 성장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개헌에서 주목받지 않은 조항중 하나가 시 정부의 인대(人大, 시 의회)가 헌법과 상급 성(省) 정부의 법규와 충돌하더라도 상급 성 인대 상무위원회 비준을 거쳐 시행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지방정부 권한을 늘리는 권력 분산 정책에 부합한다.

하지만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기반 확보로 중국 경제적 역동주의의 원천이 돼온 지방정부의 창의적 불복종이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반부패를 내세운 시 주석의 권력 강화가 △철강 과잉공급 △환경오염 △지방정부 부채 등 해묵은 문제 해소에 진전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강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은 10년도 더 됐지만 실제 집행되는 건 시진핑 정부 들어서다”(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강략한 중앙 집권의 효율성이다. “시진핑의 간판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와 슝안(雄安)신구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관측도 있다. 아이단 야오 악사인베스트먼트 이코노미스트가 “시 주석이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됐기 때문에 개혁에 긍정적이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앙집권은 공무원의 과도한 충성으로 이어지면서 부작용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스모그가 심해지면 환경설비 업체 공장의 전원까지 불시에 차단하는 일이 생기는 등 과도한 단속으로 “중국에서 공장을 운용하는 한국기업들은 환경 단속으로 하룻밤 자고 나면 업체가 문을 닫아 전쟁과 다름 없다는 얘기를 한다.”(원중재 세종 베이징사무소 대표 변호사)

옌메이 셰 카베칼드래고노믹스 애널리스트는 “지방관리들이 대기오염 해소 목표를 맞추기 위해 석탄 공급을 차단하면서 겨울이 시작하는 시점에 허베이성의 수천명 주민을 난방없는 환경에 노출 시켰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에 권력이 집중돼서 생기는 키맨 리스크도 거론된다. 줄리안 이반스 프리차드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고지도자의 계획이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고위급 관료들이 더 강력해진 시 주석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올해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정부업무보고에선 ‘시진핑’이 13차례 등장한다. 역대 어느 정부 업무보고에도 보지 못한 현상이라는 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다.

◇ 당의 영도 강화 VS 시장화 개혁

이번 개헌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는 내용이 헌법 1조에 삽입됐다. 우한대학의 친쳰훙 교수는 "지금껏 '당의 영도'는 헌법 서문에만 규정돼 있었으나, 이제 본문에 삽입됨으로써 법적인 구속력을 갖게 됐다"며 "'당의 영도'라는 표현은 이제 다른 법률에도 나타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의 영도 강화와 시 주석의 장기집권은 법치에 기반한 시장화 개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자원배분에서 시장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건 구호에 머물고 기업에 대한 당의 개입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다.

중국에서 당의 영도는 새삼스러운 구호가 아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천명하면서도 내세운 4개 원칙중 하나가 당의 영도 견지다. 하지만 당의 영도 수위는 점진적으로 낮춰져왔다. 덩샤오핑은 1983년 ‘당의 영도에 있는 공장장 책임제’에서 ‘당의 영도’를 뺀다. 당위원회 대신 공장장에 생산과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이 다시 당의 영도 수위를 높이는 쪽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주석이 19차 당 대회 보고에서 ‘시진핑 사상’의 첫번째 원칙으로 ‘당정군민학(黨政軍民學)을 망라한 모든 사업에 대한 당의 영도(領導⋅리더십) 견지’를 천명한 데 이어 개헌 본문에 당의 영도를 삽입한 것이다.

당의 영도 강화는 상장기업과 외자기업까지 당 위원회를 통해 경영에 간섭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상하이와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34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작년 10월 중순에 열린 19차 당대회 개막 직전 기준 최소 436개사가 "기업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 당 조직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듣는다"는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을 결의했다. 7월말에 비해 148개 상장사가 늘어난 것이다.

주중독일상회가 외자기업을 압박해 당 위원회를 세워 경영에 간여한다면 독일 기업들이 집단으로 중국을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해 11월 발표한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중국 환구시보는 BMW, 폭스바겐 등 중국내 독일 기업과 외자기업을 취재한 결과, 독일측의 우려는 환상이었다며 서방매체들이 외자기업의 당지부 역할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상회의 주장을 폄하했다. 중국 회사법 19조는 당원이 3명이상이면 당지부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국정법대학의 리수중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문화대혁명 이후 지도자들은 당과 국가의 분리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는 당의 영도력 약화와 행정력 저하라는 결과를 불러왔다"며 "반부패 사정 등 당면 과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의 강력한 영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선 상장사라도 국유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는 이사회나 주총이 아닌 당 조직부가 사실상 결정한다. 당의 영도 강화는 1인 권력체제의 일사불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텐센트의 위챗 신분증, 알리바바의 도시 빅 브레인 프로젝트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통제 강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알렉스 울프 알버딘스탠다드인베스트먼트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의 중국은 자유시장 포용을 꺼린다”며 “중국의 미래 한 사람 어깨위에 지우는 건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큰 실수로 드러날 방향으로 움직여도 아무도 그를 제지할 수 없기에 ‘나쁜 황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이코노미스트지)는 우려와 맥이 닿는다.

CNN머니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 보장이 트럼프 정부의 중국에 대한 통상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기초를 시 주석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잠재적인 무역전쟁 공포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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