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키친’을 아시나요? 피비린내 물큰한 마장동 우시장의 변신

입력 2018.03.12 06:00

60년 된 ‘서울의 푸줏간’ 마장축산물시장에 부는 새 바람
김영란법으로 매출 50% 뚝…악취 오명 벗고 도시재생 시도

마장 축산물시장 전경/김은영 기자
“맥적구이란 돼지고기를 된장에 재워뒀다 구워내는 전통음식이에요. 달래나 부추 생채를 함께 먹기 때문에 특히 봄에 즐겨 먹었던 고기 요리죠.”

5일 오전 10시, 마장키친의 첫 쿠킹클래스가 열렸다. 마장키친은 축산물시장 내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에 있는 작은 부엌이다. 오늘 배울 요리는 달래맥적구이와 참나물 생채. 수업은 수강생이 함께 시장 내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인근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목살 2kg을 샀다. 500g씩 4덩어리로 나눠달라고 하자, 주인은 군말 없이 소분해 진공 포장을 해줬다. 가격은 3만4000원, 100g에 1700원꼴이다. 수업을 진행한 양경희 셰프는 “동네마트에서 돼지고기 목살을 사려면 2300~2800원은 줘야 하는데, 훨씬 저렴하다. 고기 품질도 좋다”라고 말했다.

◇ 마장 시장에 셰프가 떴다? ‘마장키친’ 개장한 이유는

마장축산물시장은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70% 담당하는 축산물 전물 도소매 시장이다. 오랜 세월 베인 물큰한 비린내가 증명하듯 60년 가까이 ‘서울의 푸줏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위생과 경관이 낙후되고, 축산물 유통 시장과 주거지역이 섞여 있어 주민들에겐 ‘자랑이자 골칫거리’였다.

마장 축산물시장 전경/김은영 기자
서울시는 지난해 2월 마장축산물시장을 서울형 도시재생 2단계 지역으로 선정하고, 2022년까지 2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올해 1월에는 핵심 시설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공간으로 시장 안에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를 열었다.

요리 교실 역시 시장과 주민들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기획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다. 마장키친의 정기원 코디네이터는 “시장을 중심으로 동마장은 아파트 밀집 지역, 서마장은 원룸과 빌라 등 저층 주거지역이다. 환경이 다르다 보니 견해차도 크다. 요리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주민과 상인 간에 거리를 좁혀, 모두가 상생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쿠킹클래스에 참석한 한 주부는 “축산물시장에서 처음 고기를 사봤다”라며 “그동안 도매시장이란 인식이 강해 올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직접 사서 요리를 해보니 가격도 싸고 고기의 식감도 부드럽다. 수업이 끝나면 장을 봐 식구들에게 배운 요리를 해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마장키친은 주민과 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 강습을 시작으로, 시장의 인프라를 활용한 발골, 정형, 숙성 등을 교육하는 특화 교실과 창업지원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 수도권 육류 70% 공급하는 축산물 시장, 김영란법 이후 매출 50% 뚝

요리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시장 탐방에 나섰다. 마장 축산물시장은 11만6150㎡ 규모에 한우, 돼지고기, 부산물 도·소매점 2000여 개가 모여 있다. 종사자만 해도 1만2000명, 시장을 찾는 수도 연간 200만 명에 달한다.

시장 곳곳에서 육류를 분해하고 손질하는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김은영 기자
시장 아케이드로 들어서자 빨간 LED 조명을 밝힌 가게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조명 아래로는 부위별로 다양한 고기들이 전시돼 있고, 가게 앞에는 내장, 간, 천엽 등 부산물이 빼곡히 쌓인 고무대야가 놓여있다. 골목엔 짐을 실은 오토바이와 상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곳곳엔 육류 분해 작업에 열중하는 정형사들이 보였다. 한 상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소는 못 먹는 게 없어. 오늘 아침 잡은 소를 바로 손질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맛있어요. 그래, 뭘 사러 왔나?”

이곳의 한우는 정품, 정량, 정찰제를 추구한다. 시장이라고 에누리를 해달라고 졸라선 안 된다. 가격은 최고 등급인 1++ 한우 등심 100g이 9000원~1만원 수준, 대형마트에서 파는 1++ 한우 등심 100g이 약 1만3000원~1만5000원임을 고려하면 20~30% 정도 싸다.

평일 낮 시장은 한산했다. 나이가 지긋한 주부와 대량 구매를 하러 온 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한때 중국 관광객의 관광 코스로 떠올랐다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시장에 머무는 동안 한 무리의 관광객이 포착됐을 뿐이다.

구제역, 김영란법, 사드 등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축산물시장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특히 지난해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50%가 급락했다. 그나마 법 개정 이후 선물 한도가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돼, 올 설에는 이전의 매출을 회복했다. 하지만 매출 대부분은 축산물시장이 자랑하는 한우가 아닌, 육우와 수입고기가 차지했다.

마장 축산물 시장 전경/김은영 기자
박재홍 마장동상가 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올 설엔 매출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한우 장사가 안돼 아쉬움이 많았다. 한우 선물세트를 만들려면 최소 15만원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도시재생사업 찬반 논란 분분…”가겟세 오를까 걱정돼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 상인은 “재생사업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며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겟세가 오르지 않겠나. 지금도 세를 감당하지 못해 가게를 내놓은 집이 많은데”라고 토로했다.

이에 박 이사장은 “도시 재생 후 발생할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성동구와 임대료 안정을 위한 상생 협약을 했다. 재생사업을 통해 악취와 주차장 문제 등을 해결해 시장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시장 상인 대부분은 40~60대 장년층이다. 하지만 곳곳엔 시장을 미래를 책임질 젊은 피가 흐른다. 하늘축산의 홍성태(28) 대표는 마장축산물시장에서 가장 젊은 최연소 상인이다. 대학 졸업 후 마장동에 들어와 허드렛일부터 배워 1년 만에 자신의 가게를 냈다. 사업한 지 이제 3년 차지만, 첫해 매출 4원, 작년엔 20억원을 거뒀다. 홍 대표는 도축, 생산, 납품 등 유통 시스템을 일원화해 손님들에게 더 싸고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마장동에서 나고 자란 2세 경영인이 운영하는 고급 정육점 본앤브레드.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성장한 본앤브레드는 다음 달 확장 이전을 앞두고 있다./김은영 기자
먹자골목이 있는 북문 입구에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본앤브레드가 있다. 마장동에서 나고 자란 정상원 대표(36)는 아버지의 한우 유통업체를 이어받아 정육점 겸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1인당 식사 비용이 20만원에 달하지만, 개점과 동시에 미식가들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본앤브레드는 개업 3년 만인 다음 달 매장을 이전한다. 정 대표는 “지금보다 5배 정도 넓은 공간으로 매장을 옮길 예정입니다. 물론, 마장 축산물시장 내에서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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