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피아노, 슈베르트에 주눅들지 않았다

조선일보
  • 김경은 기자
    입력 2018.03.12 03:03

    손정범, ARD 우승 후 첫 독주회

    건반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청량했다. 뜨거우면서 막힌 데 없이 활짝 트여 속을 후련하게 했다.

    피아니스트 손정범(27). 지난해 9월 독일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그가 콩쿠르 이후 국내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지난 8일 밤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금호아티스트―더 위너즈(The Winners)'. 손정범은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과 쇼팽의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연습곡' 등을 선보였다.

    8일 ARD 콩쿠르 우승 후 첫 독주회를 연 손정범.
    8일 ARD 콩쿠르 우승 후 첫 독주회를 연 손정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서른한 살에 숨을 거둔 슈베르트가 죽음을 두 달 앞두고 쓴 걸작 소나타. 이십대 중반 연주자로서는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손정범은 당당했다. '가진 건 젊음뿐'이라고 웅변하듯 여유로운 선율과 깊이 있는 옥타브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돌진했다. 쇼팽 12개의 연습곡에선 간혹 음표를 빼먹거나 박자가 엉켜 주춤했다. 그러나 땀방울을 떨구며 희망과 패기를 밀도 높게 펼쳐보이는 모습에 청중은 '브라보'를 외쳤다.

    여덟 살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스무 살이던 2011년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다수의 콩쿠르를 석권했지만 ARD에서 우승할 때까지 본격적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취업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 사이 유럽을 누비며 다양한 무대에 섰다.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체육관, 허름한 동사무소도 있었다. 공연장 대기실에 피아노가 없어 장식용 피아노를 놓아둔 동네 빵집에서 리허설한 적도 있다. 가게 손님들이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공연 전 만난 그는 "그때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내 색깔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듣고 싶은 칭찬은 '잘 친다!'. "그 말만 들을 수 있다면 좋아하는 농구도 포기할 수 있다"며 웃었다.

    손정범은 5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독주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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