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엔 한 나라의 철학 담겨… 이해없는 시스템 도입 문제

입력 2018.03.12 03:03

[교육을 다시 보다] 김선 옥스퍼드대 출신 비교교육학자

"각국 교육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배경부터 살펴봐야 해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비교교육학자 김선(36)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가 안타까운 어조로 강하게 말했다. 그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경제(PPE) 통합과정 학부를 마치고 비교교육학 석·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대학 입학 후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15년간 영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의 명문대학에서 교육 및 연구 환경을 경험했다.

"학문적으로 전 세계의 교육제도 및 시스템을 비교하면서 내린 가장 큰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제도는 정치, 경제, 문화, 복지 분야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진화했기 때문이에요. 제도 자체를 연구하기 이전에 제도가 생성되고 개발된 맥락부터 철저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 없이 경제·정치적 필요에 의해 모방한 교육제도나 정책, 프로그램은 성공할 수가 없어요."

최근 교육 강국의 제도를 담은 책 ‘교육의 차이’를 펴낸 김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타산지석 삼을 필요는 있지만,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며 “애초에 교육제도는 그 나라의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교육 강국의 제도를 담은 책 ‘교육의 차이’를 펴낸 김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타산지석 삼을 필요는 있지만,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며 “애초에 교육제도는 그 나라의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신영 기자
◇'우리나라의 교육 철학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해외 거주 경험 없이 국내에서만 공부하다가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그는 애초 학업 계획과 달리 전공을 교육으로 바꿨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뛰어난 인재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을 만든 교육제도에 궁금증을 느꼈던 것. 그러면서 해당 국가의 교육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나라는 독일, 영국, 미국, 싱가포르, 핀란드였다. 국가경쟁력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선진국이면서 교육철학이 확고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은 학생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노력하고, 영국은 토론 교육을 중심으로 배려하는 교양인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미국 교육은 모두에게 도전 기회를 줄 것을 강조하며, 싱가포르는 유능하고 깨끗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둔다. 핀란드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해당 국가의 교육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며 "따라서 이에 대한 이해 없이 프로그램을 무턱대고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독일의 직업교육제도를 차용해 만든 마이스터고·일학습병행제 등을 살펴볼게요. '마이스터(기술장인)'는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한 분야에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 혹은 장인을 지칭해요.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되려면 5~6년 과정의 직업학교 정규교육을 마치고도 아우스빌둥(Ausbildung·직업 훈련 학교)에서 3년간의 직업교육을 추가로 받아야 합니다. 혹독한 수련 끝에 마이스터가 되기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하죠.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마이스터라는 단어나 프로그램만 도입해서는 결코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가 없어요. 마이스터라는 개념만 차용하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구조, 일자리 정책을 고려해 제도를 만들었다면 설득력이 더 강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개편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핀란드 교육제도에 대한 논의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령 어느 나라에서 효과를 얻은 교육제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작동할 것이란 보장이 없어요. 오히려 억지로 적용하려다 기존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게 돼 혼란만 가중할 수 있죠. 핀란드 교육을 논할 때도 이러이러한 교육법이 효과가 좋으니 우리나라 수업에도 적용해 보자는 식이 아니라 '핀란드의 교육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의미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김 교수는 교육정책을 살피곤 깜짝 놀랐다. 몇 년 새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의 교육철학이 확고했다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이 자주 바뀔수록 손해 보는 대상은 사회·경제적으로 하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바뀐 정책에 맞게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교육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옹호하려던 계층이 오히려 가장 소외되는 결과를 낳는 거죠. 특히 입시 정책은 많이 고민한 다음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경쟁하기보다 자기 성찰할 시간 줘야

10대 시절 김 교수는 경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뛰어난 학생이 많은 자사고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때 그는 교육이란 '지식을 머리에 채워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교육은 달랐다. 일단 교육의 주체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었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심이었다.

"독일의 핵심 교육용어 중에 '빌둥(Bildung)'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뜻해요. 즉, 교육이란 학생 스스로 좋아하는 것, 행복한 순간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도 학생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학과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그에 반해 우리나라 학생들은 성찰할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 어떤 제약도 없이 그냥 내버려두는 시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볼 기회를 좀 주면 좋겠어요."

세 살 된 아들을 둔 김 교수는 남들이 하는 교육을 무조건 따라 하지 않을 계획이다. 현재 그는 강원도 횡성에서 거주하며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인생을 배우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여유'라고 생각해요. 그냥 뒹굴거리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게으름도 피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빡빡한 일상을 살고, 그 결과로 평가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나라의 교육도 그러한 과정으로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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