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④]김태우 "北진정성 의심...美에 '타협' 아닌 '해결' 요구해야"

입력 2018.03.11 13:45 | 수정 2018.03.11 14:43

“북한, ‘군사위협 해소, 체제안전 보장’ 단서 달아… 향후 대화의 핵심적인 지뢰밭”
“북한 평화공세 진정성 부여하기 어려워”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북핵폐기’라는 직접적인 표현 써야”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 9일 서울 봉은사로 라마다서울호텔 1층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평화공세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3월 9일 아침 미국 워싱턴에서 ‘깜짝 뉴스’가 날아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중 만나자고 답했다. 4월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중 미북 정상회담까지, 한반도가 들썩이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소식이 날아온 9일 오후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을 만났다. 국내 핵전략 권위자인 김 전 원장은 “북핵 해결을 위한 대반전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긍정적인 상황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극복하거나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북한은 비핵화를 얘기하면서 ‘군사위협 해소’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면서 “‘어떻게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선 북한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핵심적인 지뢰밭이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은 이어 “지금 북한이 하는 평화 공세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북한의 합의 위배 이력 △핵을 포기하기 어려운 북한 내부 사정 △핵보유와 제재 극복을 담은 노동당 전략 △위기 시마다 한국을 이용했던 전례 등을 들었다.

그는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회담이 진행되면 우리 정부는 ‘해결해야지, 절대 타협해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계속 보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북핵폐기’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펼치고 있는 평화공세의 핵심 키워드는 ‘이간책’”이라며 “대화는 대화대로 하더라도 ‘선제, 방어, 응징’이라는 3축 체제는 공고히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정의용(가운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훈 국정원장, 정 실장, 조윤제 주미 대사. /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5월 중 만나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미북 정상회담이 어느 정도 합의된 셈이다. 일련의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나.

“특사단의 방북 성과 발표와 미국에서 브리핑 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봤을 때, 원칙적으로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북한이 대화하겠다고 하니 한번 해보자’며 북한의 파격을 수용했다. 북핵 해결을 위한 대 반전이 될 수 도 있다는 기대감, 긍정적인 것임은 확실하다. 다만 극복하거나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우선 특사단이 북한 다녀와서 발표한 것을 보면 과거 북한과의 핵 합의와 비교해 새로운 내용이 없다. 북한은 이번에 비핵화를 얘기하면서 군사위협 해소,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오만가지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을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다섯번째 항에선 ‘북한의 미사일과 재래무기를 남쪽으로 향하지 않겠다’고 돼 있는데, 이 항목은 자칫하면 핵 보유를 정당화할 수 있다. 합의안에 함정이 많다.”

-‘북한의 미사일과 재래무기를 남쪽으로 향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이 펼치고 있는 평화공세의 핵심 키워드는 ‘이간책’이다. 한·미, 한·일, 한국 내 국론 분열을 야기하고, 심지어 미국 여론까지도 흔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습을 반추해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고, 북한이라는 공동의 위협이 있다. 공동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동맹을 맺었는데, 주적인 북한 지도자의 친서를 한국이 받아서 미국에 가져다 준 셈이다. ‘우리의 핵은 미국을 향한 것이며, 핵 가진 상태를 인정해달라’는 북한의 메시지를 한국 대표 입으로 미국에 가서 이야기하는데 국제사회가 어떻게 보겠나. 이런걸 반추하면서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핵은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균형론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당시 보수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주장이었는데, 지금은 좀 상황이 달라졌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재배치’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재 상태로 가면 전술핵 재배치 의제는 쏙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좀 더 크게 봐야 한다. 한국이 중재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또 남북, 미북 대화를 앞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고민하면 그 안에 전술핵 문제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 현재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북제재 공조와 핵 우산 강화, 동맹 태세 유지다. 그 다음에 가능하다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한·미 핵공유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이 이 부분에 대해 아직까지 입을 열지 않고 있지만 전략차원에서는 논의해야 한다. 또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의 동참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도 동참하겠다’는 답을 해야 한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한다고 보나?

“핵무장을 하면 잃는 게 많다. 현 시점엔 불가능한 이야기다. 대신 평화적 핵 주권은 가져야 한다. 핵무기는 만들지 않더라도 유사시 잠재력은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 제가 주장했던 것은 농축과 재처리 기술 확보를 이야기했는데 이건 지난 기술이다. 이제는 1세대 원자 폭탄이 아닌 2세대 수소폭탄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중수소, 3중수소, 핵융합기술을 익혀야 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 9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평화공세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일각에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핵·미사일 문제의 합의점이 보이면 우리 정부가 미국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빼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절대로 안된다. 북한과 관련해 ‘선제, 방어, 응징’이라는 3축체제 구축은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 부분은 미국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위협 즉 핵무기나 미사일 개수를 감안하면 지금 한국 방위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비유하자면 추운 날씨 까놓은 배 위에 하나 얹어놓은 손수건이 바로 사드다. 이것을 없앤다는 것은 안보 정론과 크게 위배된다. 대화는 대화대로 하더라도 3축체제는 3축체제대로 가야 한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김정은이 먼저 ‘우리도 주한미군 이해한다,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북한 입장에선 미국과 대화를 하는 정치적인 이벤트가 굉장히 중요하다. 김정은은 실제로 트럼프와 대화할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정치적인 이벤트를 만들기까지는 미국에 저자세로 나갈 것이다.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 이후다. 대화 국면에 들어가서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적인 지뢰밭이다. 북한은 아무 얘기나 다 할 수 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군사훈련부터 시작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여기서 더 범위를 키우면 미국의 적대시 정책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까지도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대화국면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가 진정성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지금도 북한의 이번 평화 공세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보수 성향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북한이 그동안 해온 것을 보면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다. 우선 북한은 과거 중요한 합의를 위배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적어도 다섯번 이상이다. 1990년 비핵화 공동선언을 헌신짝 취급했고, 1994년엔 제네바 합의를 했는데 파키스탄과 플루토늄 농축 거래를 했다. 2005년 6자회담 이후 9·19 공동성명을 했는데, 그 다음해엔 핵실험을 했다. 이후에도 2·13 합의, 10·3 합의가 있었고, 그 때 매우 구체적으로 핵시설을 표시하고, 봉인하고, 신고하고, 핵을 폐기하고, 검증하는 과정까지 절차적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원론에 합의한 뒤, 각론에 들어가자 시비가 시작됐다. 전형적인 공산주의자들의 협상 수법이다. 결국 다 무산됐다. 2012년엔 2·29합의를 했다. 그런데 또 얼마 안 있어서 장거리 미사일을 쐈다. 합의 파기 역사가 너무나 찬란하다.”

-과거엔 그랬지만 이번엔 다른 것 같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과거 사례만 있는게 아니다. 북한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두번째 이유는 북한의 내부 사정이 쉽게 핵포기를 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에 핵보유국이라 칭했고, 2013년에는 ‘자위적 핵 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에 대한 법’이라는 이른바 ‘핵보유법’을 제정했다. 북한 주민들 뇌리에 박히도록 핵 보유를 선전해 왔는데, 갑자기 핵을 버리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 이유도 있다. 북한의 평화적 공세는 올해 신년사에서 비롯됐는데, 신년사 발표 직전 있었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대 전략방향을 채택했다. 2대 전략방향은 ‘핵보유를 어떻게 기정사실화하느냐’ ‘제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두가지 였다. 평화 공세에도 북한의 전략이 담겨있다. 북한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는 네 번째 이유는 북한이 어려울 때 마다 한국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할 때 북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하는 등 화해, 협력으로 나왔다. 그 이후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도 무사히 넘겼다. 2006년 이래 현재까지 유엔 안보리가 통과시킨 대북제재 결의안이 11개에 달한다. 무지막지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이 제재가 북한 목에 턱턱 차올라서 북한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 시점에 한국을 다시 이용하려는 것이다.
네 가지를 종합하면 북한의 평화공세는 환영하지만 아직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진정성을 보여주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정의용(왼쪽 앞)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다. 정 실장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정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여정(맨 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상회담은 외교적으로 봤을 때,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다. 정상회담 이전에 실무진끼리 만나 어느정도 합의문을 완성시키지 않을까. 이는 사실상의 미북채널 정상화로 봐야하지 않나.

“지금도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죽인다’면서도 오슬로, 제네바에서 비공식적으로 접촉해왔다. 뉴욕에도 채널이 있다. 북한이 얘기할 채널이 없어서 미국과 얘기 못한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도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하는 것이다. 특사교환, 실무회담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전까지도 북한과 접촉해왔던 인사를 최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북측에선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 인사의 북한에 대한 평가는 ‘답답하다’ 였다. 북한의 핵 공세는 예전과 똑같은 상황인 셈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혹시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진 않지만 ‘묵인’하는 방식으로 결론짓는 건 아닐까.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회담이 진행되면 우리 정부는 ‘해결해야지, 절대 타협해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계속 보내야 한다. 북핵 문제는 해결해야지, 타협해서는 절대 안된다. 타협이란 중간선의 해결을 말하는 것이다. 중간선이라고 하면, 첫째로 핵동결, 둘째로는 핵 실험 또는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을 들 수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특히 화성-14나 화성-15 같은 초장거리 미사일을 안 쏘겠다고 하고 거기에 미국이 타결을 시도하면 한국에는 재앙이다. 미국은 당장 가려운 것을 해소할 수 있지만 한국에는 재앙이다. 한국을 향한 북한의 핵능력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동결을 하고, 이에 맞춰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없애거나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식으로 타협하는 것 역시 한국에는 재앙이다. 이미 북한은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능력을 오래 전에 완성했다. 미국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가 완성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지 몰라도 한국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되려 우리 정부가 ‘타협도 괜찮다’고 하는거 아닐지 걱정된다.

“우리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선 시나리오를 상정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크게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착한 시나리오와 나쁜 시나리오다. 착한 시나리오는 북한이 ‘제재를 못견디겠다’면서 핵 폐기에 진정성을 갖고 나온 경우다. 이 그림으로 간다면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제사회나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북한에 퍼줘도 괜찮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움직임을 보여도 무방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나리오로 갈 것이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거의 없다. 사실상 나쁜 시나리오가 더 유력하다.”

-나쁜 시나리오는 어떻게 진행되나.

“북한이 다시 한번 이중전략을 펼친다고 보면 된다. 과거 핵 대화를 보면 북한은 마치 핵을 포기할 것처럼 하면서 대화에 나선다. 핵을 포기할테니 반대 급부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핵 개발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 대화 따로, 핵 개발 따로인 셈이다. 나쁜 시나리오로 간다면 핵 대화는 결국 결렬되고, 미북관계도 냉랭해지고 남북 관계도 힘들어질 것이다. 대북제재도 다시 강화될 것이다. 문제는 그 때 우리 정부가 어떻게 가느냐다.”


-한국 정부는 어떤 길로 가야 하나.

“한국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남북한 관계개선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동맹과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할 것인지의 문제다. 남북관계에 연연한다면 북한 편을 들면서 미국에게 인내와 양보를 요구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 국제사회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기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남북관계는 부드럽겠지만 동맹은 파열음이 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은 고립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손보기 위해 무역공세를 거세게 할 것이다. 국제사회도 한국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동맹과 국제사회 관계를 우선시하고 미국이 원하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에 동참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긴장되고 북한이 도발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중 관계도 껄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유지되고 우리 안보도 정론대로 갈 것이다.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첫번째 선택지로 가면 안된다. 이를 선택하면 짧게 단 것을 빨아먹을 수 있지만 후세에게 물려줄 안정과 번영은 없을 것이다.”

-미국 쪽에선 우리 정부가 어떤 쪽을 선택할지 고민이 되겠다. 미국에선 한국과의 동맹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 입장에서 동맹의 가치를 따질 때 얼마나 가치있는 동맹인지를 가르는 잣대 네가지가 있다. 바로 전략적 가치, 경제적 가치, 자구능력, 이념적 상응성이라는 기준이다. 현재 한미관계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네 가지가 모두 나쁜 상황이다. ‘전략적 가치’ 면에서 현재 미국의 최대 전략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여기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죽기살기로 미국과 함께 간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전략적으로 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적 가치’를 보자.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과의 무역 역전을 참아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손해보지 않겠다고 한다.”

-자구능력과 이념적 상응성은 무엇을 말하나.

“‘자구능력’은 국방비를 말한다. 이번 정부가 이번에 국방비를 많이 올렸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이다. 전세계에서 안보위협이 가장 높은 나라를 꼽자면 한국과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국방비가 GDP의 7% 수준이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 쓸 돈을 안쓰고 미국에 떠넘기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이런 부분에 시비를 걸지 않았지만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경제 민족주의를 외치며 문제 삼고 있다. ‘이념적 상응성’도 과거보다 나빠졌다. 한국에서 안보를 결정하는 중요 직책에 어떤 사람들이 앉아 있는지 미국 정부가 유심히 보고 있다. 과거 좌편향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전향을 선언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미국 입장에선 멀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미국이라고 생각해봐라. 전쟁에 군대 보내서 4만명이 죽었고, 물건을 사주면서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그 덕분에 나라가 잘 살게 됐는데,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그동안 피흘려 막으려했던 북한을 편드는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앉아있지 않나. 아니라고 부인하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서 전략적 가치를 말했는데,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는 게 한미관계에 긴장을 주는가.

“미국 전문가 100명 중 99명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 견제는 지상과제인데 이에 가장 도와주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라고 꼽는다. ‘일본과의 동맹은 영국과의 동맹보다 더 중요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일동맹의 가치가 이렇게 높아졌는데, 한국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외면하고 일본과 부딪히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미국에서 훨씬 심각하게 본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이 얽혀서 돌아가면 한미동맹 약화, 코리아패싱으로 가게 된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처럼 싸울건 싸우더라도 안보는 안보대로 협력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조선일보 DB
-국내에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북핵 개발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며 싸우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나.

“둘 다 틀렸다. 보수와 진보가 그 문제를 두고 싸우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고 의미가 없다. 북한 핵문제는 북한 정권이 지금까지 죽기살기로 밀고 온 문제로, 진보 정부가 설득한다고 해서 설득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보수가 강한 원칙을 내건다고 해서 중단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니다. 우리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굳이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김대중 정부 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핵을 포기하길 희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도와준 것이 북한 핵개발에 도움을 준 측면은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우리정부의 정책이나 대책이 사실 북핵 해결에 있어선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라고 할까. 옆에서 무슨 짓을 해도 북한은 개의치 않고 갔다. 6자회담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북핵에 대응한 안보적 대응태세를 갖추는 것 밖에 없는 셈인가.

“전과목을 다 공부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안보를 챙기고, 동맹을 챙기고, 3축체제 챙기고 해야 한다. 사드도 더 필요하다면 더 가져와야 한다. 안보는 정론대로,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절대 축소하면 안된다. 북한에겐 우리가 너희들이 이용해먹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남북대화에선 반드시 비핵화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 표현 대신 ‘북핵폐기’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다 핵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뉴욕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 초 ‘핵주권론’을 얘기했다. 이는 노태우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배치된 주장이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국방연구원을 떠나게 됐다. 이후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국방정책연구실 국방정책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을 지내다 2011년 이명박정부에서 통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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