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민기가 보냈던 '위험 신호'...갑작스러운 죽음은 없다

입력 2018.03.10 16:31 | 수정 2018.03.10 20:45

“이미 죽음의 턱밑에 와 있다.”

제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던 배우 조민기(53)씨는 이렇게 주변에 압박감을 호소했다. 일부 지인들에게는 전화를 걸어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경찰 소환 사흘 전인 지난 9일 그는 부인에게 “바람 좀 쏘이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조씨가 떠나기 전 남긴 말들이 ‘경고 신호’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세상에 예고없는 죽음은 없다. 위기에 몰린 사람은 말이나 행동으로 주변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6년 극단적 선택을 한 121명의 유가족을 면담한 결과, 사망자의 93.4%가 경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유가족의 81%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67%는 사망자가 사망 뒤에야 경고신호를 이해했다. 나머지 14%는 신호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조민기씨 빈소. /연합뉴스

◇ 죽음 거론, 초췌한 모습...조민기의 ‘경고 신호’
경고 신호는 ‘위험군’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의도가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언어, 행동, 정서 차원에서 표현된다. 조씨도 사망 직전 주변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죽음’을 직접 거론했고, 자필 사과문을 언론사에 보냈으며 지인들에게 사과 전화를 돌렸다. “깔끔한 옷차림을 즐겼던 조씨가 최근에는 털모자를 깊게 눌러 쓴 초췌한 모습이었다”는 것이 이웃들 얘기다.

조씨는 제자 성추행 의혹이 나온 지 18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기간 그는 방영예정 드라마에서 하차했고, 소속사와 결별했다. 교편을 잡고 있던 청주대에서는 면직처분을 받았다. 온라인에서 악성 댓글이, 현실에서는 경찰 수사가 목전에 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학자는 “조씨는 36년 연기경력, 12년의 교수 생활이 단 18일 만에 무너지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故) 조민기(53)씨가 사망한 서울 광진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지하 창고/최문혁 기자
◇ 유명인들의 경고 신호...14년 불면증 박용하, 조성민의 암시 문자, 뛰쳐나간 종현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죽음’같은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먼저 간다. 잘 있어” “부담되기 싫어” “내가 없는 편이 나을 거야” 같은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3년 숨진 야구선수 고(故) 조성민씨도 주변에 "그 동안 고마웠다" "내가 없어도 꿋꿋하게 잘 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취지의 글을 편지나 일기장 등에 쓰는 것도 경고 신호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것들은 주로 사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후 세계를 동경하거나 고인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도 징후 가운데 하나다. “소화가 안 된다”, “허리가 아프다” 등 신체적으로 불편감을 호소해도 경고 신호가 아닌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험군’ 연예인들이 주로 털어놓는 고통은 불면증이다. 한류스타 고(故) 박용하씨는 14년이나 수면제를 복용할 정도로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 숨진 가수 고(故) 김종현씨도 집안에서 뛰쳐나간 뒤 충동적으로 숙박업소를 예약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평소 하지 않는 행동, 급격한 정서변화도 이상 징후다.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사람은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는 언어, 행동, 정서 차원에서 표현된다. /조선DB
수면 습관이 바뀌거나 식욕·체중이 변화한 경우도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 현금을 찾아 가족에게 전달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거나, 평소와 달리 가족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해도 의심해봐야 한다.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만 지내거나 ▲갑작스럽게 우는 경우에도 주위의 관심이 필요하다.

경고 신호가 감지된다면 가족·지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은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철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경고 신호를 외부로 노출하게 되어 있다”며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부추기는 것 아닌가’고 고민하지 말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병원 정신과, 자살예방센터, 자살예방 게이트키퍼를 찾아서 체계적인 상담을 받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 하루 36명 극단적 선택하는 나라...“죽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우리나라는 연간 4만명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다. 이 가운데 8000여명이 퇴원 이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극단적 선택’은 전염되는 질병이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심리부검’에서 사망자 10명 가운데 3명(28.1%)은 과거 가족의 극단적인 선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윤성 순천향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사망자의 과거를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극단적인 시도를 한 흔적이 나온다”면서 “더구나 극단적인 행동은 전염요소가 있어, 가족처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 수는 1만3092명이다./조선DB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 수만 1만3092명이다. 하루 평균 36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셈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극단적 선택이 명예를 회복하거나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는 잘못된 의식이 있는데, 죽음으로 해결되는 문제란 없다”면서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된 사건이라면 신속한 수사를 해서 피의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낮추는 것도 이 문제를 방지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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