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말한 '비핵화 유훈'은 3代에 걸친 기만술"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18.03.08 03:04

    [남북 '3·5 합의']

    1991년 김일성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동의한 걸 말한 것
    당시 北은 핵 개발前… 주한미군 전술핵 무기 철수시킬 의도
    핵 열올리는 北, 2009년 정상회담 추진때도 '유훈' 언급 눈가림

    대북 특사단을 이끌고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브리핑에서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주목할 만하다"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했다. 북·미 대화를 견인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만한 명분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핵 전문가들은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이란 과거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의미한다"며 "북한의 기만적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날까지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노동신문을 통해 "조선의 핵보유는 정당하며 시빗거리로 될 수 없다"고 밝혔다.

    ◇北 비핵화와 무관한 '유훈'

    과거 북한은 국제사회가 비핵화를 요구할 때마다 "김일성 주석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말했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마치 비핵화에 뜻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 '유훈'은 김일성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동의한 데서 유래한다. 당시 북한은 아직 핵을 완성하기 전이었다. 반대로 한국엔 주한미군의 전술핵 무기가 있었다. 한때 950기에 달했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유훈'이란 '미제의 전술핵 철수'를 뜻한다. 북한 비핵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북한이 '비핵화' 앞에 '조선(북한)' 대신 '조선반도(한반도)'만 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文대통령 친서’ 읽는 김정은 -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을 맞아 면담과 만찬을 한 10분 분량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5일 문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장면.
    ‘文대통령 친서’ 읽는 김정은 -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절단을 맞아 면담과 만찬을 한 10분 분량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5일 문 대통령의 친서를 읽는 장면. /조선중앙TV

    북한이 이 '유훈'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나선 김정일 정권 때였다.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상습적으로 '김일성 유훈' 또는 '선대의 유훈'을 언급했다. 2005년 6월 대통령 특사로 방북했던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도 귀환 브리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어제 정 실장 브리핑을 보고 2005년 생각이 났다"고 했다. 북한은 1년 뒤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의 '유훈' 언급이 상습적이란 사실은 통일부도 인정한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2013년 6월에도 북·미 당국 간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북한 국방위 대변인 중대 담화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 유훈이며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 60여 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했다.

    ◇2009년 정상회담 추진 때도 '유훈' '판문점 회담' 언급

    북한은 2009년 하반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도 '김일성 유훈'을 언급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전직 정부 관리에 따르면, 남북은 그해 10월 싱가포르와 11월 개성에서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 접촉을 가졌다.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가 그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의 조문 특사단이 방한한 것을 계기로 해빙기를 맞았을 때다.

    이 관리는 "당시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기만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란 언급이었다"고 했다. 우리 측이 "비핵화는 반드시 정상회담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북한이 '유훈' 표현으로 갈음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또 정상회담 평양 개최를 주장하던 북한은 11월 개성 접촉에서 우리 측이 "서울이나 판문점에서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자 판문점 개최에 잠정 합의했다. 정 실장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한 정상회담 판문점 개최도 이미 2009년에 나왔던 얘기인 셈이다.

    당시 양측은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2차례(11월 7·14일) 접촉을 가진 뒤 곧바로 장관급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에 최종 합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장관급 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정상회담 논의는 중단됐다. 이 관리는 "북의 '유훈' 언급에 대해 우리가 '그런 수준으로는 안 된다.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요구하자 북한이 회담을 차버렸다"고 했다. 4개월 뒤 북한은 백령도 근해에서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우리 예술단 16년만의 평양 공연, 정상회담 이전 열릴 듯 김명성 기자
    정세현 "北이 커다란 양보를 했다"는데… 전현석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