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한 달 월급 1달러 노동당 중간 간부가 보는 북핵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18.03.08 03:17

    배급과 월급 의미 없어진 北, 당 간부들 상납 뇌물로 생활
    유엔 제재는 이 구조에 타격
    태풍 피하고 2년 버티자는 게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회담
    시간과 의지의 싸움 시작됐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들으니 북한 최하층 가계의 한 달 생활비가 실효 환율로 10~20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아니라 거의 생물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이다. 중간층은 50~100달러, 장(場)마당 부자와 같은 상류층은 중간층의 두 배 이상 돈을 쓸 것으로 본다. 그런데 당 중간 간부, 군 간부들은 장마당에 나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중·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다. 노동당이 이들에게 한 달에 주는 월급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1달러가 되지 못한다.

    군과 당 간부들 생활을 유지해주는 것은 전부 '뇌물'이다. 합법적 뇌물과 불법적 뇌물이 있다. 북한은 중국과 무역하며 리베이트를 걷는데 이것이 여러 비공식 경로로 당 간부들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한다. 합법적 뇌물로 연간 3억~5억달러에 이른다. 5만~6만명이라는 북한 해외 근로자는 모두 큰 뇌물을 바치고 외국으로 나온 사람이다. 이들이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월 수백달러 중 일부도 당 간부들에게 흘러간다. 북한 규모에선 막대한 돈이다.

    더 큰 것은 장마당을 원천으로 하는 불법적 뇌물이다. 북한에는 1000개 가까운 크고 작은 장마당이 있고 거기에 수십만 개에 달하는 가게가 있다. 배급 경제가 붕괴된 북한에서 장마당 경제는 이제 전체 북한 주민 수입의 90%에 이른다. 한 달에 1달러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가장(家長)은 당에 찍히지 않기 위해, 그래도 가끔 나오는 배급을 놓칠까 봐 기업소에 나가 빈둥거리고 엄마와 자식이 장마당에 나가 생활비를 번다.

    이 장사꾼들 중에는 100만달러를 축적한 거부급까지 있다고 한다. 북한 땅에서 장마당은 눈감아주는 권력의 배경 없이 돌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마당에서 바쳐지는 뇌물이 하급 당 간부에서 중간, 고급 당 간부로 올라간다. 이것이 북한의 실질적 경제 구조이자 인민들과 당 간부들의 생존 루트다. 지금의 이 북한은 우리가 알던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유엔의 새 대북 제재 2321호는 북한의 바로 이 뇌물 경제, 생존 루트에 심각한 타격을 가한다. 중국과 무역이 막히면 리베이트가 끊기고 무역하던 군(軍) 기업소들의 달러가 마른다. 무역이 줄면 장마당 규모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상납되는 뇌물 액수도 쪼그라든다. 빚내 뇌물 바치고 해외로 나갔던 근로자들이 강제 귀국 당하면 막대한 상납액이 끊긴다. 그 근로자들은 불안·불만 세력화한다. 한 달에 처자식과 함께 생활비를 100~200달러 쓰던 당 간부가 갑자기 정기 상납받던 뇌물 액수가 줄고 월급 1달러의 현실 아래 놓이면 어떤 위기감을 갖게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북한은 대북 제재 2321호에 대비해 작년에 수입을 늘렸다. 그래서 대북 제재는 이 물품들이 소진되는 올해 말쯤 본격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현재의 북한 상황을 '태풍 전야의 고요'라고 표현한다. 폭풍우가 불고 있지는 않지만 비바람은 이미 시작됐고 북 주민 모두가 곧 태풍이 닥칠 것을 예감하고 있다.

    올해 북한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는 90%까지 격감한다. 당 간부들이 유엔 제재로 자신들의 생활이 막막해질 수 있다는 현실을 앞에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간부들은 머리로는 수령과 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은 1달러 월급으로 배급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한다. 김정은은 여기서 평화 공세 카드를 빼 들었다. 태풍이 닥치기 전에 태풍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핵 포기는 김씨 왕조의 몰락이라고 믿고 있다. 신앙 수준이다. 그에게는 앞으로 2년이 중요하다. 2년만 보내면 제재 동력은 자연스레 약화될 것으로 믿고 있고 실제 그렇게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공격을 받지 않고 2년을 보내기 위해 지금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 '미·북 회담을 한다'고 부산한 것이다.

    이렇게 2년이 가면 그사이 북핵 고도화가 완성되고 핵탄두가 100개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 핵탄두 100개면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북핵 사태는 시간 싸움이기도 하고 의지 싸움이기도 하다.

    대북 제재의 동력과 결의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 제재의 빈틈을 얼마나 막느냐가 관건이다. '핵 지키려다 다 죽게 생겼다'는 생각이 노동당 중간 간부들과 북의 신(新)중간층에 퍼져나가면 북의 핵 의지는 봄눈처럼 녹아나간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게 지금의 북한이다. 그때야 비로소 김정은이 핵에 대한 전략적 셈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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