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세탁소 아저씨 아파트 출입비 8만원 어떡하나?

조선일보
  • 이진석 논설위원
    입력 2018.03.08 03:14

    최저임금·근로시간 등 10개월간 시행착오 연발
    정부, 市場 얕보고 있다… 더 이상 휘저어선 안 돼

    이진석 논설위원
    이진석 논설위원

    '○○세탁소 출입협조비 8만원.'

    얼마 전 집에 날아온 아파트관리비 내역서를 뒤적이다 고민거리가 생겼다. 잡수입이 적힌 맨 뒷장이 문제였다. 단지를 돌며 세탁물을 걷어가는 세탁소 아저씨는 관리사무소에 매달 8만원의 출입비를 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10년인데 처음 알았다.

    몇 개 더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일하는 세차(洗車) 할아버지는 한 달에 5만원을 낸다. "2년만 더 있으면 일흔 살"이라는 할아버지는 조수 역할을 해주던 할머니가 몸이 불편해 요즘은 혼자 나온다. 세차는 두 팀이 더 있는데 마찬가지로 5만원씩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놀이터 옆 주차장에 천막을 치는 과일 가게에서는 매달 25만원을 받고 있었다.

    "이런 돈을 꼭 받아야 하느냐"고 물어보려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20년도 더 된 일이고, 단지 내 독점 영업을 허용해주는 대가로 받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탁소 2곳 가운데 1곳은 출입비가 몇 달 밀렸지만, 세차와 과일 가게는 별문제 없다고 했다.

    이런 잡수입들이 분리 수거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수고비 등으로 나간다고 했다. 아주머니 일곱 분에게 7만원씩 준다는 것이다. "이 동네 아파트들 다 비슷하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출입비를 받지 않으면 다른 세탁소들이 영업을 하게 돼 세탁소 아저씨가 손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 수거 아주머니들의 수고비가 깎일지 모른다는 걱정도 생겼다. 세차 할아버지가 출입비를 내지 않으면 관리사무소와 수돗물값 시비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엉뚱하게 흘러가서 세차가 중단되고, 과일 가게는 문을 닫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꼬리를 물었다. 불쑥 끼어들 자신이 없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파트가 1000만 채가 넘고, 아파트 거주 비율이 48%에 달하는 나라다. 출입비를 받는 아파트가 적지 않을 듯싶다. 출입비를 없애야 하는 게 맞는지, 어떤지 고민이 커진다. 세상 일은 맞물려 돌아간다. 그래서 뭔가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덜컥 저질러 놓은 최저임금 인상을 보면 안다. 대통령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버팀목"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월급을 올려줄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면, 직원과 종업원을 줄이게 된다. 정부는 3조원 넘는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준다고 나섰고, 임대료 부담 덜어주고, 신용카드 수수료 낮춰준다고 동분서주한다. 그럴수록 시장 원리에서 더 멀어져 간다. 월급이 적으니 올려주면 된다는 식으로 경제를 풀어가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물에 빠진 사람이 1명이면 뛰어들어 구하면 되지만, 100명이라면 달라야 한다.

    근로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든다고 한다.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기업 부담을 일방적으로 늘리는 식으로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니 또 세금으로 메꿔준다고 한다. 강남 집값을 단칼에 잡을 듯이 덤벼들지만 더 오른다. 월 10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부모들이 3만원에 아이들에게 영어 냄새라도 맡도록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없앤다고 하다가 물러서기도 했다.

    이만큼 시행착오를 했으면 알 때도 됐다.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시장에는 시장의 질서가 있다. 시장 사람들은 다 안다. 이 정부는 시장을 얕보고, 함부로 휘젓는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정치가 시장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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