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伊 제1당 오성운동, 32세 대표 '디 마이오'

입력 2018.03.06 18:46

4일(현지 시각)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 결과 반이민과 반유럽연합(EU)을 앞세운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이 집권 중도좌파를 누르고 승리했다. 특히 단일 정당으로는 오성운동(M5S·Five Star Movement)이 32%의 득표율(235석 안팎)을 기록해 이번 선거의 승자가 됐다.

오성운동은 2009년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와 2016년 사망한 컴퓨터공학자 잔로베르토 카살레조가 반부패·반유럽연합(EU) 등의 기치를 걸고 2009년 세운 정당이다. 2013년 총선에서 109석에 그쳤지만, 5년 만에 몸집을 두배로 키웠다. 오성운동의 급성장과 함께 32세의 젊은 당대표, 루이지 디 마이오를 향한 관심도 뜨겁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당대표가 2018년 3월 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블룸버그
디 마이오 대표는 항상 짧은 머리에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섰다. 디 마이오 대표는 말끔한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극우 포퓰리즘 단체라는 낙인이 찍힌 오성운동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디 마이오 대표는 이제 이탈리아 사상 최연소 총리직을 노리고 있다.

◇ 신 파시스트였던 아버지…보잘것 없던 청년, 포퓰리즘에 발 내딛어

디 마이오는 1986년 7월 6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 아벨리노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소규모 건설업 사업가이자 신파시스트당인 이탈리아사회운동당 소속의 의원이었고, 어머니는 라틴어 교사였다. 디 마이오는 삼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디 마이오는 나폴리 페데리코 2세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다 법학과로 전과했지만 중퇴했다. 비록 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양쪽 학과에서 모두 학생회 임원으로 일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한 뒤 식당 종업원, 건설 일용직으로 일했다. 나폴리 산 파올로 경기장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웹마스터로 일하기도 했다. 디 마이오는 또 비디오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하거나 개인 소셜 미디어 마케팅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그의 이력은 시시한 것들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던 중 디 마이오는 2007년 코미디언 베퍼 그릴로가 결성한 ‘베퍼 그릴로의 친구들(Friends of Beppe Grillo)’ 모임에 가입했다. ‘베퍼 그릴로의 친구들’은 그릴로가 지난 2005년 약 4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만든 SNS 모임이었다. 그릴로는 이 모임을 “정치권을 비판하고 함께 즐기면서 이탈리아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의 규모는 점차 커졌고, 14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적 조직으로 확대됐다.

◇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함께 성장…최연소 하원 부의장으로

그릴로는 2009년 ‘기성정치의 부패 단절’과 ‘유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오성운동을 정식 창당했다. 그릴로는 기존 정치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오성운동에 당(party) 대신 운동(movement)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당은 전국민 인터넷 무료 제공, 주 20시간 노동, 기본소득 보장, EU 탈퇴, 자유무역 반대 등 포퓰리즘 성격의 공약을 내세우며 인기를 얻었다.

2018년 3월 2일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당대표(오른쪽)와 베퍼 그릴로(왼쪽)가 4일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집회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
디 마이오도 자연스레 오성운동의 당원으로 활동했다. 당의 성장과 함께 그의 정치 인생도 탄탄대로였다. 디 마이오는 2013년 총선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6세의 나이에 최연소 하원 부의장이 됐다. 로이터통신은 “디 마이오가 이탈리아 하원의 역대 최연소 부의장에 뽑힐 때 다른 정당 의원들의 반대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오성운동은 창당 이후 처음으로 맞은 2013년 총선에서 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집권 민주당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을 원했고, 오성운동을 주목했다. 가디언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이탈리아 경제가 무너지면서 기존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깊어졌고, 이는 2013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이 큰 승리를 거둔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오성운동의 극우 색채와 포퓰리즘적 성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오성운동 당수였던 그릴로는 과거 자동차 사고를 이유로 2013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고, 이에 “그릴로는 직접 정치에 나서지 않고 훈수만 두는 비겁한 인사”,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 매력적인 청년, 이탈리아를 홀리다…‘경험 부족’ ‘빅 브라더 배후설’ 등 우려도 잇따라

그러나 2017년 9월 디 마이오가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디 마이오는 깔끔하고 호감 가는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되돌렸다. 또 오성운동이 반난민, 반EU 등 극우적 면모만을 강조한 데 반해 디 마이오는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국민의 신임을 얻었다. 일례로 디 마이오는 총선을 앞두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의 방침을 보류했다. AFP는 “디 마이오의 균형 잡힌 행동이 이번 선거에서 오성운동이 승리하도록 만들었다”고 평했다.

이제 디 마이오는 최연소 총리직을 바라보고 있다. 오성운동은 4일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창당 9년 만에 최대 정당의 자리에 올랐다. 디 마이오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성운동에 표를 던진 1100만명의 국민 덕분에 역사적인 승리를 이뤄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헝 의회(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없는 것)의 경우를 놓고 “우리는 북부 발다오스타에서부터 남부 시칠리아까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차기 정부를 오성운동이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3월 2일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당대표가 4일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 앞에서 오성운동 지지자들이 피켓과 깃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블룸버그
다만, 일각에서는 디 마이오의 정치적 경험이 많지 않고,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을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 BBC는 디 마이오와 오성운동이 포퓰리즘을 바탕으로 한 만큼 이탈리아 유권자의 지지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디 마이오가 오성운동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8일 오성운동의 실세는 디 마이오가 아닌 다비데 카살레조(42)라고 주장했다. 다비데 카살레조는 그릴로와 함께 오성운동을 결성한 잔로베르토 카살레조의 아들로, IT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NYT는 오성운동 탈당자들이 “카살레조가 자신에게 순응하지 않는 당원을 쫓아내고, 당의 방침을 결정했다”고 털어놨다며 “카살레조는 이탈리아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며, 오성운동의 배후에 가려진 ‘빅 브라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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