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공기업 지분 팔아 창업펀드 조성… 이젠 '스타트업 천국'

입력 2018.03.06 03:03

[창간 98 기획]

[경제, 정상들이 먼저 뛴다] [1.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下]

비대한 공공 부문 줄이고 혁신 산업 키우는 '일석이조' 효과
해외 유치 벤처투자금 3조원… 英 첫 추월, 獨보다 2배 많아

프랑스 최연소 각료인 무니르 마주비(34) 디지털경제 장관은 26세에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일으킨 사업가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그를 IT와 창업 담당 장관으로 임명했다. "프랑스를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고 싶다"고 한 공약 임무를 그에게 맡겼다. 마주비의 세계 IT업계 네트워크는 최고의 인재를 프랑스로 끌어들이는 데 위력을 발휘한다. 세계적 신경과학자인 미국 MIT의 뉴턴 하워드 교수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ni20'이라는 뇌신경 프로젝트 연구소를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 세우기로 했다. 뇌과학은 인공지능(AI) 등 각국 기업들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차세대 산업의 핵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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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개 기업이 입주한 세계 최대 '파리 스타트업 캠퍼스'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세계 최대 스타트업 창업 공간‘스타시옹 에프(Station F)’의 내부. 화물 철도 역사를 개조한 이 공간에 스타트업 100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스파시옹 에프
세계 최대 IT 박람회인 CES(소비자가전쇼)는 각국 기업들이 미래 기술을 가지고 승부를 벌이는 전장(戰場)이다. 주최국 미국 기업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다음은 인해전술식 창업이 이어지는 중국. 셋째가 프랑스였다. 370개 기업이 참여했다. 그중 284개가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이었다.

프랑스도 원래는 제조업 강국이었다. 화학·원자력·방위산업에서는 여전히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1970년대 이전 창업한 기업들이다. 미국에서 애플·구글·페이스북·아마존이 탄생하고, 중국에서 알리바바·텐센트·샤오미가 등장할 때 프랑스에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린 신생 기업은 나오지 못했다.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늙은 나라'였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시옹 에프'
마크롱 집권 이후 분위기는 바뀌었다.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스타트업 기업 수는 1만 개를 돌파했다. 마크롱은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작년 취임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대규모 벤처기업 육성책을 발표했다. 100억유로(약 13조3000억원) 규모의 혁신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벤처기업에 쏟아붓겠다는 내용이었다. 재원은 81개 공기업 지분을 팔아 조달하기로 했다. 공공 부문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혁신산업을 키우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렸다. 마크롱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작년 9월 곧바로 에너지기업 '엔지'의 지분 4.5%를 팔아 15억유로를 확보했다. 올해도 복권회사 FDJ, 통신사 오랑주 지분을 차례로 팔 계획이다.

마크롱은 프랑스를 창업과 스타트업의 글로벌 허브로 만들려 한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유럽에선 파리가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해외 창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창업자·투자자·연구개발자를 위해 해외 인재와 가족이 4년간 프랑스에 머물 수 있는 '프렌치 테크 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1년 동안 1000명 이상이 이 비자를 신청했다. 2년 전부터는 '프렌치 테크 티켓'이라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각국의 유망 스타트업을 프랑스로 초청해 4만5000유로(약 6000만원)의 자금과 일할 공간을 제공한다. 작년 세계 각국에서 2700개 창업팀이 신청했다. 그중 70개 팀이 선발됐고, 55개 팀이 프랑스에 법인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도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면 실업급여를 주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마크롱은 창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 2년 동안 실업급여를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창업 리스크를 정부가 어느 정도 보완해주겠다는 것이다.

다양한 창업 인프라가 구축되자 프랑스에는 벤처 투자금이 몰려든다. 시장조사업체 딜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프랑스가 유치한 벤처캐피털 투자금은 27억유로(약 3조6000억원)였다. 독일(15억유로)보다 2배 가까이 많았고, 항상 선두였던 영국(23억유로)도 처음으로 추월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인 '스타시옹 에프'가 마크롱 취임 직후 개관하면서 이웃 유럽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통신재벌 그자비에 니엘이 자비를 털어 만든 3만4000㎡의 공간에 약 1000개의 스타트업에 소속된 50여 개 국적의 젊은이 3000여 명이 '미래의 구글'을 꿈꾸고 있다. 이곳에는 벤처캐피털, 컨설팅 회사 등 창업 지원 기업들과 페이스북·구글·네이버 등 각국의 간판급 IT 기업들이 대거 들어와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마크롱은 개관식을 포함해 이곳을 두 차례나 방문했다. 뉴욕타임스는 "스타시옹 에프는 변화하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창업한 미카엘 마스(35)는 "기업을 일으키려는 젊은 세대들에게 마크롱은 구세주"라고 했다.


'공기업 개혁' 마크롱, 2022년까지 공무원 12만명 감축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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