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오스카 거머쥔 맥도먼드의 서늘한 연기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8.03.06 03:03

    쓰리 빌보드

    엄마는 황폐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숨졌다.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채 버려졌다.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마을 외곽 옥외 광고판(빌보드) 세 개를 사들여 핏빛 바탕에 이런 문구들을 하나씩 써넣는다. '(그 애는) 성폭행당하면서 죽었어!' '아직도 못 잡았다고?' '서장, 어떻게 된 거지?' 경찰은 광고판 문구에 요동치고 이웃 사람들도 흥분한다. 통렬한 복수극쯤 될 것 같지만 15일 개봉하는 영화 '쓰리 빌보드(감독 마틴 맥도나)'는 관객 기대를 정확히 배반한다. 차디찬 고드름에 잘못 손댔다가 불에 데인 듯 아픈 것처럼 이 영화도 대강의 줄거리만 읽고 표를 끊었다간 뒤통수 맞을 수 있다.

    엄마는 경찰이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자 마을 외곽 광고판에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광고를 낸다.
    엄마는 경찰이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자 마을 외곽 광고판에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광고를 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방향을 튼다. 엄마 밀드레드는 "경찰이 흑인 고문하기에 바빠 내 딸 범인을 못 찾고 있다"고 격노한다.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와 담당 수사관 딕슨(샘 록웰)은 밀드레드의 표적이 된다. 관객도 처음엔 밀드레드가 겪었을 참담한 고통에 몰입한다. 이야기가 한쪽으로 치달으려면 윌러비는 나쁘고 딕슨은 한심해야 한다. 사람이란 그러나 본래 단순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관객은 돌연 혼란에 빠진다.

    대개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따른다. 수많은 드라마가 끓는점을 향해 내달리지만 '쓰리 빌보드'는 반대다. 이리 돌고 저리 튕겨지면서 녹는점(鎔點)을 향해 간다. 울퉁불퉁한 길을 가면서도 영화가 휘청거리지 않는 건 밀드레드를 연기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 덕분이다. 그녀의 연기는 뜨겁고도 서늘하다. 금세 잡힐 것 같은 범인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때조차 그녀는 비틀거리지 않는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명제는 맥도먼드 앞에서 이미 효력이 없다. 맥도먼드의 핏대 선 목선을 보면, 여자는 어머니든 아내든 딸이든 강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맥도먼드는 5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무대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네 엄마가 페미니스트인 덕분에 네가 잘 컸다고 믿는다"고 했다.

    시종일관 바보짓 하다 마지막 순간 표정을 바꾸는 샘 록웰 연기도 탁월하다. 관객은 그를 마냥 미워하거나 측은해할 수도 없다. 그 역시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밀드레드 전남편이 만나는 어린 여자 페넬로페(사마라 위빙)가 가장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아이로니컬하다. 페넬로페는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부른다"고 말한다. 그 말투에 관객은 피식 웃지만 이윽고 깨닫는다. 때론 진짜 이야기가 그렇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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