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초상화' 회수 작전… 처칠의 진짜 다키스트 아워?

조선일보
  • 이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3.05 03:06

    이혼녀와 4년간 밀회, 초상화 그려… 헤어진 연인, 그림 갖고 美로 떠나

    그림 공개되면 戰勢에도 악영향… 전쟁지원 호소하려 訪美때 손써
    前애인, 그해 그림과 함께 귀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the Darkest Hour)'의 주인공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나치 독일과 '타협'하라는 압력을 뿌리치고 끝까지 싸워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영웅'이다. 하지만 그는 '그림 한 점' 때문에 하마터면 전쟁을 망칠 수도 있었다고, 영국 공영 TV '채널4'가 4일(현지 시각) 다큐멘터리 '처칠의 비밀스러운 관계'에서 소개했다. 그 그림은 처칠이 한때 사랑에 빠졌던 여성을 그린 초상화였다.

    처칠은 1941년 12월 말부터 3주간 미국 백악관에 머물렀다. 독일군 격퇴를 위한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방문엔 5년 전 헤어진 연인을 '조용히' 영국으로 귀국시키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1930년대 중반 프랑스 남부 한 해변에서 윈스턴 처칠(오른쪽)과 그의 정부(情婦) 도리스 캐슬로시가 함께 찍은 사진.
    1930년대 중반 프랑스 남부 한 해변에서 윈스턴 처칠(오른쪽)과 그의 정부(情婦) 도리스 캐슬로시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 그림은 처칠이 그린 도리스의 초상화 중 한 점이다. /채널4
    1933년 처칠(당시 60세)은 런던 사교계에서 유명한 도리스 캐슬로시(당시 33세)란 여성을 알게 됐다. 이혼한 남편 성(姓)을 땄지만, 본래 성은 델러빈(Delevingne). 현재 영국의 유명 모델이자 여배우인 카라 델러빈의 고모할머니다. 두 사람은 그해 여름을 프랑스 남부의 한 별장에서 함께 보냈다. 처칠은 도리스에게 "당신은 내게 축복이고 햇살"이라고 썼고, 둘은 1936년까지 매년 여름 그곳을 찾았다. 처칠에게 가장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1929년 총선에서 그가 속한 보수당은 패했다. 부인 클레먼타인도 1934년 미술품 상인과 잠깐 바람이 났다. 처칠은 이 별장에서 안락의자에 누운 '육감적' 모습 등 도리스의 초상화 세 점을 그렸다. 하지만 처칠이 1937년 정치 일선에 복귀해 히틀러의 부상(浮上)을 경고할 때쯤 둘 사이는 끝났다. 도리스는 1940년 처칠이 그린 '육감적' 초상화 한 점을 갖고 미국으로 떠났다. 둘은 1942년 1월, 워싱턴 DC에서 다시 만났다. 도리스는 빈털터리였고, 처칠은 이 초상화가 누출될까 봐 크게 걱정했다. 적국(敵國)이나 미 매체에 넘겨져 불륜이 드러나면, 정치 생명뿐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호소하는 노력에도 '재앙'이었다. 도리스는 그해 영국에 돌아왔고 그림은 회수됐다.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오랜 기간 처칠의 개인 비서였던 자크 콜빌이 1985년에 남긴 육성 테이프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장시간 증언의 뒷부분에 있는 탓에, 2016년에야 처음 발견됐다. 콜빌은 "처칠은 딱 한 번 끔찍한 짓을 했어. 도리스 캐슬로시와 잠깐. 다신 그런 실수를 안 했을 거야"라고 증언했다. 부인 클레먼타인은 1965년 처칠이 죽고 도리스의 편지 몇 통을 발견하고는 "평생 내게 충실했다고 믿었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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