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韓中日 뒷간·우물 들여다봤죠"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3.03 03:02

    '동아시아의 우물' 펴낸 민속학자 김광언 명예교수
    각국 시골마을서 주거문화 조사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아"

    원로 민속학자인 김광언(79) 인하대 명예교수는 30년 전부터 한·중·일 주거민속을 비교 연구하고 있다. 현장 조사를 위해 한반도 남부 곳곳을 누비는 것은 물론 거의 매해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한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시골마을을 돌며 옛 문헌에 나타난 주거시설과 문화를 직접 확인한다.

    "1988년 '한국의 주거민속지'를 낸 뒤 우리가 문화를 받아들인 중국, 전해준 일본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세 나라를 함께 봐야 각 나라 주거민속의 특색을 알겠더라고요."

    김 교수가 최근 펴낸 '동아시아의 우물'(전 2권·민속원)은 1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한·중·일의 우물 종류와 민속·금기·속담, 지역별 특징, 두레박·물통 등 관련 도구를 사진·그림과 함께 실었다. 그는 앞서 '동아시아의 뒷간'(2002년), '동아시아의 놀이'(2004년), '동아시아의 부엌'(2015년) 등을 출간했다.

    민속학자인 김광언 명예교수는 30여년 동안 한국과 일본, 중국을 누비며 동아시아의 뒷간·놀이·부엌·우물 등에 관한 비교연구를 했다. 그는 “한·중·일의 주거민속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고 했다.
    민속학자인 김광언 명예교수는 30여년 동안 한국과 일본, 중국을 누비며 동아시아의 뒷간·놀이·부엌·우물 등에 관한 비교연구를 했다. 그는 “한·중·일의 주거민속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동아시아의 우물은 중국 저장성의 양쯔강 하류에서 시작돼 벼농사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온 뒤 일본 규슈 지방으로 전파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 교수는 중국은 저장·산둥·안후이·윈난성, 일본은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 남쪽 섬까지 찾았다. 주민들은 자기 나라 사람도 오지 않는 벽지에 우물을 보러 온 한국인 노학자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김광언 교수는 "우물도 다른 동아시아 문화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뿌리, 한국은 둥치, 일본은 가지에 해당한다"고 했다. 중국은 우선 우물의 규모가 크다. 한국과 일본의 우물은 입이 하나나 둘 있는 일안정(一眼井), 이안정(二眼井)이지만 중국에는 구안정(九眼井)도 있다. 우물을 둘러막아 쌓아올린 우물전도 규모와 기술이 앞선다. 일본은 우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물이 메말라도 메우지 않고 할 수 없으면 제주(祭酒)를 부은 뒤 청죽(靑竹)을 바닥에 박아서 지기(地氣)가 숨 쉬도록 한다. 일본인의 우물 사랑은 '우물 정(井)' '샘 천(泉)'이 앞에 들어간 성씨(姓氏)가 215개, 35개에 이르는 데서도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 사이토 다다시(齋藤忠)는 경주 일대의 신라 우물전이 바빌론의 석조 미술품보다 뛰어나다고 찬탄했다. 그런데 이런 우물 문화가 전승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신라 우물전들은 지금 제대로 된 설명문도 없이 국립경주박물관 뜰에 뒹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우물 문화 쇠퇴를 보여주는 다른 예는 석굴암 본존불(本尊佛) 아래 있던 요내정(遙乃井)이 사라진 것이다. 요내정은 부처님께 바치는 샘물인 알가정(閼伽井)이었고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은 그 위에 불상을 앉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보수공사를 하면서 우물을 없애고 관을 묻어서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 1960년대 석굴암에서 200m 아래 배수구를 만들어 감로수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붙였다. 김광언 교수는 "석굴암 조성과 관련 깊은 요내정은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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