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고독한 터널… 재도전 나선 수험생들을 응원합시다

조선일보
  • 윤종운 독서실 운영·서양화가
    입력 2018.03.02 03:11

    윤종운 독서실 운영·서양화가
    윤종운 독서실 운영·서양화가

    대전에서 5년 전부터 80석 독서실을 운영하며 서양화 작품 활동도 한다. 30대 중반으로 중·고교 교사 경험도 있다. 아침 8시, 각종 시험에 도전하는 수험생과 대학 입시생들을 맞기에 앞서 여기저기 둘러본다. 책상에 지우개 가루와 흡연 구역 재떨이에 꽁초가 많은 걸 보니 어제도 수험생들의 열정과 고뇌가 넘치게 쌓였던 것 같다. 학생들이 하나둘 입실한다. 목표는 다양하다. 공무원 시험, 대입, 자격증 취득 등…. 다들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고 머리를 싸맨다.

    모두 표정이 비장하다. 하지만 말을 해보면 다 내 동생이요, 과거 나의 제자들이다. 더러는 형님 같은 늦깎이 공시생도 있다. 안쓰러운 한편으로 목표를 향해 파고드는 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밤낮 책을 붙잡고 있으면서 부푼 희망에 가슴이 뿌듯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목표가 있으니 견딜 만했다.

    아침 일찍 낯익은 얼굴이 찾아왔다. 작년 공무원 시험 직전에 짐 정리하고 떠난 학생이 다시 등록하러 왔다.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재도전 학생의 기분은 나와 반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경찰·장례사와 독서실 운영자는 비슷하다. 손님이 다시 왔다고 무조건 반가워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웃음기가 없었다. 긴 터널을 다시 홀로 뚫고 가야 한다는 막연함이 서려 있다. 터널의 끝이 원하는 곳이 아닐 수도 있고, 터널을 다 지나지 못하고 포기할 것 같은 두려움도 엄습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공연히 미안하다. 혹여 내가 자리 배정을 잘못해준 탓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번엔 좋은 자리를 주자고 다짐한다. 때로는 "독서실에도 '학습 명당'이 존재할까?" 같은 생각도 한다. 아무튼 가급적 원하는 자리를 주려고 신경 쓴다. 뭔가 불안정해 자주 들락거리는 학생은 더 세심히 살피고, 내가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배려가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학습에 집중하도록 응원하고 조력할 뿐이다.

    공부는 고독한 싸움으로, 혼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힘들다. 달리기도 홀로 뛰면 금방 지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같이하면 힘이 나고 동지 의식과 선의의 경쟁의식도 싹트는 법이다.

    의욕에 넘쳐 1년치 등록비를 한꺼번에 내려던 학생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한 달도 안 돼 짐을 정리하곤 한다. 처음부터 너무 힘주면 바로 지친다. 오래달리기처럼 천천히 속도를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등록하라고 권한다. 어린 학생보다 성인일수록 조언이 더 필요하다. 흔들릴 일이 얼마나 많은가. 친구도 만나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연애와 여행도 하고 싶고….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인생 선배로서, 또 시대의 고민을 함께하는 젊은이로서 한배를 탄 선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여학생이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화장이 진하고 옷차림에도 멋을 부렸다. 내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정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합격자들은 저마다 인내의 대가를 합격으로 보상받았다. 그래서 고맙다. 취업이 어렵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시험의 벽은 높다. 그래도 인내하며 노력하면 축복이 찾아온다. 새벽마다 독서실 문을 닫으면서 내일은 등록자보다 합격 소식을 알려오는 학생이 더 많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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