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서양고전산책] '야누스의 두 얼굴'에서 배우는 지혜

조선일보
  •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입력 2018.02.27 03:13

    억지웃음과 분노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지만
    원래 '야누스의 두 얼굴'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보는 것
    일그러진 야누스의 얼굴 말고 미래 대비하는 통찰력 배워야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야누스는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두 가지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첫째는 미국 TV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다. 그는 과학자인 배너 박사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이다. 배너 박사는 이지적이며 온화하지만, 분노가 폭발하면 무시무시한 초록색 괴물로 변한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배너와 헐크는 '야누스의 두 얼굴' 전형으로 각인됐다.

    또 다른 이미지는 아수라 백작이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 Z'에 나오는 악당으로, 반쪽은 남성 나머지 반쪽은 여성인 기괴한 얼굴 조합을 하고 있다. 그런데 원래 아수라는 불교에 나오는 악귀의 대마왕이다. 싸우기를 좋아해서 '전쟁의 신(神)'이 되었다. 그래선지 싸움판을 '아수라장'이라고 부른다.

    처음에 그는 선한 신이었지만, 하늘에 덤벼들어 싸우면서 악한 신이 되었다. 하늘이 이기면 세상이 평화롭지만 아수라가 이기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다. 하늘이 강해져 아수라를 압도하려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선해져야 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더 많아지면 아수라가 득세하고 만다. 이 역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또 다른 이미지였다.

    두 이미지와 연결된 '야누스의 얼굴'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완전히 오해였고, 그런 오해가 생긴 데는 영국 철학자 쿠퍼 탓이 컸다. 감정과 욕망, 이성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그는 저서 '인간, 매너, 의견, 시간의 특성에 관하여'에서 "한쪽 얼굴로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다른 쪽 얼굴로는 노여움과 분노를 표하는 작가들의 이 '야누스 얼굴(Janus-face)'만큼 우스꽝스러운 것은 없다"고 썼는데, 그것이 널리 퍼진 것이었다.

    이것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 갖는 원래 뜻을 왜곡한 것이다. 내가 '야누스 얼굴'의 실체를 찾은 것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로마의 축제일' '1월 편'에서였다. 야누스는 고대 로마의 아주 중요한 신(神)이다. 두 얼굴을 가졌지만, 헐크나 아수라 백작과는 달리 정면과 뒤통수에 얼굴이 있다. 뒤통수의 얼굴은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하는데, 두 얼굴은 역사를 통찰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와 통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로마인들은 이런 두 얼굴의 야누스를 안과 밖을 향해 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문(門)과 짝지었다. 문을 라틴어로 '야누아(Ianua)'라고 하니, 야누스(Ianus)는 영락없이 문의 신이다. 문은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 세계로 나가는 통로다. 문이 없다면 벽에 차단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로마인들의 신앙이 생긴다.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통과해야 하니, 조심하라! 문의 신이 노하면 한 발짝도 내밀 수가 없다!" 그들은 '새해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이라는 뜻에서 1월을 '야누스의(Ianuarius)' 달이라고 했고, 새해 첫날 야누스에게 정성껏 제물을 바쳤다. 이 말은 영어의 '재뉴어리(January)'가 된다. 로마인들은 설뿐만 아니라 매월 첫날, 하루의 아침도 야누스에게 바쳤다. 야누스가 허락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간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야누스 신전의 문만은 굳게 닫혀있기를 소망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이 로마의 카피톨리움 언덕을 공격했다. 로마인들이 쩔쩔맬 때, 야누스가 나타나 뜨거운 샘물을 뿜어내 적들을 쫓아냈다. 그때부터 로마인들은 전쟁이 터지면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열었다. 야누스가 나타나 도와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면 야누스의 문을 닫았다. 그래서 야누스의 문이 항상 닫혀 있기를 소망한 것이다.

    지금 우리도 옛 로마인들과 같은 소원이 있다. 일본의 약탈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기적처럼 일구어낸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를 굳게 지키길 원한다. 전쟁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도 '야누스의 문'을 굳게 닫고 누릴 평화를 희망하며 야누스의 지혜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일구어낸 오늘날의 윤택함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고 현대 문명이 직면한 온갖 문제, 예컨대 환경오염과 핵무기 확산, 정치·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제거할 지혜와도 통한다. 그 지혜는 부정부패를 교묘히 감추는 일그러진 야누스의 얼굴이 아니라, 진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명사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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