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틀어박힌 김영철…줄줄이 찾아온 핵심 당국자들

입력 2018.02.26 17:15 | 수정 2018.02.26 18:18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방남(訪南) 이틀째인 26일 숙소인 서울 워커힐 호텔에 머무르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최고위급 인사들이 차례로 워커힐 호텔을 찾아 김영철을 만났다. 이날 점심때는 청와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영철과 호텔에서 오찬을 했고, 오후에는 호텔에서 서훈 국정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이 거론된다. 또 북한으로 돌아가는 27일 오전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회담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정부 외교·안보 라인 핵심 당국자들이 줄줄이 호텔을 찾아 천안함 폭침 주범(主犯)을 ‘알현’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영철 등 북 대표단은 호텔 한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6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김영철과의 오찬을 마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6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김영철과의 오찬을 마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호텔에서만 회담한 김영철

평창올림픽 폐막식(25일)에 참석했던 김영철은 26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각에 호텔에 도착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말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한 채 호텔에 들어갔다. 천안함 관련 질문만 세 번째 받았지만, 김영철의 대답은 없었다.


▲김영철이 26일 오전 12시 20분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로 돌아왔다. 김영철은 전날 평창행(行) 특별열차를 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진부역에서 특별편성 KTX열차를 타고 숙소에 돌아갔다. 이날 광진서 5개중대(1중대당 70명) 이외에도 서울청에서 경찰 인력이 투입돼 총 350명이 경비를 섰다./이다비 기자


이후 김영철은 계속 호텔에서 식사를 해결하면서 두문불출했다. 대신 우리 정부 인사들이 잇달아 호텔로 김영철을 찾아왔다. 김영철과의 오찬을 위해 이날 워커힐 호텔을 찾은 통일부 천해성 차관은 김영철의 호텔 내 일정을 일일이 챙겼다. 이날 천 차관이 실무자들과 걸어가며 “조찬이 (오전) 9시가 맞느냐” “출발은 (오전) 10시30분” 등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본지 기자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오찬이 열린 호텔 1층 중식당은 우리정부 관료들로 북적였다. 경호요원들은 투숙객의 이동을 제한했다. 호텔에 묵고 있는 투숙객들이 “왜 이렇게 복잡하냐” “도대체 누가 오길래 이러느냐”고 취재진에 물었다. 김영철 일행과 우리 측 인사들이 회담한 중식당은 빈 자리가 여기저기 보였지만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통제됐다. 기자가 예약문의를 하자, “점심시간에 만석이어서 오후 2시30분 이후에야 이용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7일 오전 11시 55분쯤 김의도 남북회담본부장(왼쪽), 천해성 통일부 차관(가운데), 김기혁 남부회담 운영부장(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1층 중식당 '금룡'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정부 관료들은 이 곳에서 북한 김영철과 회담을 가졌다. /최문혁 기자
27일 오전 11시 55분쯤 김의도 남북회담본부장(왼쪽), 천해성 통일부 차관(가운데), 김기혁 남부회담 운영부장(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1층 중식당 '금룡'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정부 관료들은 이 곳에서 북한 김영철과 회담을 가졌다. /최문혁 기자

정의용 실장과 김영철은 이날 오후 12시30분부터 2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워커힐 호텔에서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는 우리 측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북핵 6자회담 수석 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동석했다. 정부는 이날 회담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지속 가능한 남북 관계 발전, 국제 사회와의 협력이 균형 있게 진전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했다.

전날에 이어 호텔 주변에는 수백명의 경찰관들이 배치돼 강도높은 검문 검색을 이어갔다. 전날 이 호텔을 찾은 이모(28)씨는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데 경찰이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느냐’고 따져 물었다”며 “김영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이) 투숙객한테까지 검문을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김영철 스스로 본인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부도 김영철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며 “정부에선 김영철이 전범(戰犯)이 아니라고 하지만 김영철이 언론에 자주 노출됐을 때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호텔에 ‘김영철 전용 베이스캠프’ 차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정부 당국은 이번 회담을 위해 북한 대표단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회담 베이스캠프를 차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밀접하고 의미 있는 대화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호텔에서의 격의 없고 다양한 회담은 남북 간 대화를 급진전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와 북한 고위 관계단이 회담을 가진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입구. 취재진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최문혁 기자
우리 정부와 북한 고위 관계단이 회담을 가진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입구. 취재진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 /최문혁 기자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워커힐 호텔은 보안·경호에 편리해 김양건 통일전선 부장이 방남했을 때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들은 “1박에 1800만원 하는 특급 호텔을 잡아놓고, 천안함 폭침 주범을 배려한다며 호텔에서만 회의를 하는 등 지나친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했다.


▲27일 오전 11시 55분쯤 김의도 남북회담본부장(왼쪽), 천해성 통일부 차관(가운데), 김기혁 남부회담 운영부장(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1층 중식당 '금룡'에 들어가고 장면. 이들은 김영철의 오는 27일 일정에 대해 “조찬이 (오전)9시 맞느냐” “출발은 (오전) 10시30분” 등의 대화를 나눴다./최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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