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문·이과 나눈 '半쪽 인재'로는 AI 시대에 도태된다

조선일보
  •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18.02.24 03:17

    과학기술 발전 가속화로 불평등 심화, 인간존재 위협 등 복합적인 문제들 속출
    창의적 문제 해결력 기르려면 공학과 인문·예술 겸비해야
    새 시대 맞는 교육 개혁 시급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인류 역사는 가속도로 변화해 간다. 오늘날 10년간의 변화는 과거 100년 합계보다 훨씬 크다. 프랑스혁명의 서막인 파리 바스티유 성(城) 함락 소식은 요즘 같으면 뉴스 속보로 전 세계에 신속히 퍼지겠지만, 당시에는 느릿느릿 전달되어 850㎞ 떨어진 베지에(Béziers) 사람들은 7일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19세기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가려면 최상급 마차와 말, 솜씨 좋은 마부를 동원해도 2주 이상 걸렸는데 오늘날 TGV 고속철로는 4시간이 채 안 걸린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시발점은 산업혁명이었다. 철과 석탄, 혁신적 기계가 등장하고, 철도와 기선, 자동차와 비행기가 발명되어 세계가 한 마을처럼 가까워졌다. 현대인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산다. 그 양을 인력(人力)으로 환산하면 우리 국민 한 사람당 노예 100명을 거느리고 사는 셈이라고 한다.

    요즘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은 또 다른 차원의 변화를 예고한다. 인간의 근육이 아니라 뇌(腦)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증기기관 사례를 보면 처음에는 물레방아보다 못한 수준으로 출발했다가 어느 단계를 지나 폭발적 발전이 일어났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언젠가는 인간보다 수백 배 똑똑한 기계가 등장할 것이다. 게다가 강력한 '인공 근육'과 '인공 뇌'는 서로 연결되려 한다.

    인간의 능력을 넘는 힘과 이성(理性)이 결합한 로봇이 일상화되면, 스티븐 호킹이 예견하듯 100년 안에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일어날까? 당장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더 염려되는 문제가 있다.

    먼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너무나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할 위험이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모두 기계가 대신해 주면, 그때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정작 대부분은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하고 결국은 남아도는 시간 속에서 부질없는 오락에 골몰하는 초라한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를 선진국 또는 일부 계층이 독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되는 불평등의 심화도 예상된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모든 발전은 불평등이 심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과실을 나누어 가진 적이 없다. 현재 진행되는 변화도 그런 과정을 답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은 고사하고 '1차' 산업혁명의 성취도 아직 전 세계에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극빈(極貧)'의 기준은 하루 1.25 달러(약 1345원)로 연명하는 수준인데, 이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만 10억명에 이른다.

    이른바 '밑바닥 10억(bottom billion)'이라고 하는 이들은 지금 추세라면 영양 부족, 전염병, 물 부족 같은 비참한 굴레를 깨고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놀랍게도 미국과 같이 잘사는 나라에서도 이런 극빈 수준에 있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나 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이처럼 복합적이다. 한편으로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런 발전이 초래할 인간 존재에 대한 위협 그리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며, 풍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확실한 것은 이런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갈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미래에 대비한 좋은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과학·공학 능력에다 인문학적 성찰과 예술적 감성을 조화롭게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고릿적 방식을 고집한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문과생과 이과생으로 나누어 굳이 '반(半)쪽 인재'로 만들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단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 짧은 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푸는 식의 입시(入試)로는 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앞날에 젬병만 잔뜩 만들어 낼 뿐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질을 키워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비상(飛上)할지 주저앉을지 다시 고비를 맞은 지금, 임시방편적인 입시 제도 개편을 넘어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 개혁과 정비야말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