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철 訪南 노림수'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나

조선일보
입력 2018.02.24 03:20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3일 "2014년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 때도 김영철이 북한 대표였는데 새누리당은 '남북 대화가 꾸준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고 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014년 김영철과 2018년 김영철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인데 왜 야당이 김영철의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가를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김영철이 북측 군 고위 관계자로서 판문점 남북 군사 회담에 참석한 것과,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가 우리 주최 올림픽에 주빈으로 초대받아 2박 3일 동안 우리 땅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같은 줄에 놓고 비교한다는 얘기다. 4년 전 회담에서 우리 측은 대남 도발 총책임자였던 김영철에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번에 김영철이 오면 같은 요구를 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통일부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일으킨 것이고 당시 정찰총국장이 김영철이었던 것은 맞는다"면서도 "그러나 구체적 관련자를 지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2010년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김영철을 주범으로 판단한다고 했던 데 대해 "가능성을 말한 것으로 공식 발표는 아니었다"고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회에서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김영철이)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 공식 입장이었던 '천안함 김영철 책임론'을 8년 만에 희석하느라 말이 꼬이고 있다. 김영철을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트는 협상 상대로 맞으려니 그의 신분 세탁이 필요해진 것이다. 반면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영철의 방남에 대한 질문을 받고 "김영철이 천안함 기념관에 가서 그가 책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온 것을 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며 주저 없이 김영철을 천안함 폭침과 연결했다.

2016년 7월 독일 정부는 북한의 주독 대사 내정자가 '정보기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주재국의 동의 절차)을 거부했다. 상대 국가가 외교사절로 보내겠다는 사람에게 고약한 전력(前歷)이 있으면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 인물) 선언을 할 수 있다. 우리 국민 수십 명을 죽게 만든 테러에 관련됐거나 관련된 것으로 의심할 소지가 있는 사람을 상대방이 협상 대표로 보낸다면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결례고 도발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물쭈물 말을 흐리고 여당 지도부는 오히려 문제 삼는 사람들을 타박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영철을 대표로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상황은 실제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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