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병원이 영화사·CNN에 소송하는 까닭은

입력 2018.02.22 03:05 | 수정 2018.02.22 13:06

[내달 영화 '곤지암' 개봉… CNN은 '세계 7대 소름 돋는 곳'으로 선정]

- '공포·폐가 체험의 성지'로
큰 공사 필요해 1997년 폐쇄
청소년들, 공포 체험한다며 침입… 소리 질러대 주민들과 잦은 충돌

- 美 거주하는 병원 소유주
"영화, 귀신들린 것처럼 그려… 병원장 실종도 사실과 달라… 논의 중이던 매각계약 파기돼"

21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의 한적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페인트칠 이 벗겨져 검게 변한 건물이 나타났다. 커튼은 찢어져 바람에 나부꼈다. 지상 3층인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천장엔 작은 구멍 여러 개가 뚫려 있었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10여 개 방마다 깨진 유리 조각과 나무 판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운 공포감이 몰려왔다. 21년 전까지 병원으로 쓰이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남양 신경정신병원'이었지만, 사람들은 흔히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불렀다.

2012년 미국 CNN이 '세계 7대 소름 돋는 곳' 중 하나로 이곳을 꼽았다. 이후 '공포·폐가 체험의 성지(聖地)'가 됐다. 인터넷에는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공포 체험을 했다는 동영상이 1000여 건 올라와 있다. 공포 체험 글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건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왜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소문만 무성했다. 이 병원 건물이 이번에 법적 공방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21일 찾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의 일명‘곤지암 정신병원’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21일 찾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의 일명‘곤지암 정신병원’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에‘공포 체험 마니아들의 성지’로 알려진 이곳은 내달 개봉하는 공포 영화‘곤지암’의 소재가 됐다. 이 건물 소유주는 영화 제작사 등을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성형주 기자
이곳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공포 영화가 발단이다. 21일 제작 발표회를 한 '곤지암'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1979년 환자 42명 사망' '병원장 실종'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내달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십수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병원 건물 소유주가 나타났다. 소유주 홍모(63)씨는 "영화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최근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제작사와 배급사, 감독에게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CNN에 대한 소송도 준비 중이다.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병원 부지를 매각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홍씨는 "영화 때문에 막대한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고있어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됐다"고 했다. "괴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둔갑해 병원이 정말 귀신 들린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최근 매각 논의가 되고 있었지만 영화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약이 파기됐다고 했다.

이 병원은 홍씨의 부친이 세웠다. 1981년 이 부지를 사들였고 1983년쯤 건물을 지어 신경정신병원을 열었다. 영화에선 '병원장이 실종됐다'고 나온다. 홍씨는 "개원 때부터 원장으로 일했던 정신과 전문의는 현재 강원도에서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건 병원이 1997년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다. 홍씨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아들 형제가 병원을 물려받았지만 둘 다 미국에 머물고 있어 관리가 어려웠다"며 "당시 상수원 보호법 개정으로 병원을 계속 하려면 정화조 설치 등 큰 공사가 필요해 아예 문을 닫은 것"이라고 했다.

'공포 체험 마니아'들이 몰리면서 이웃 주민들도 괴롭다. 관리인은 "여름에는 오토바이 탄 청소년들이 찾아와 소리를 엄청나게 질러댄다"고 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선 공포 체험 한다며 병원 내부에 허락 없이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인근 부동산 대표는 "전국에서 봉고차를 빌려서 오고 한 번에 20명씩 지하철을 타고 온다"고 말했다.

홍씨는 "건물에 허가 없이 들어가 촬영했다"며 영화 제작사 등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고려 중이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측은 "건물에 무단 침입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동영상을 보고 부산의 옛 해사고 터에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홍씨는 "제작사 해명이 사실이라면, 영화 제목을 '해사고'로 하지, 왜 '곤지암'이냐"고 했다.

특정 지역이 공포·범죄물 영화의 배경이 된 건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는 서울 대림동·가리봉동을 범죄 소굴로 묘사했다가 이 지역 중국 동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2016년 개봉한 공포 영화 '곡성'은 전남 곡성이 무대다. 영화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곡성군청 관계자는 "영화 개봉 후 관광객이 평균 5000명 더 다녀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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