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타임머신 타고 온 사람들을 평창에서 보았다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18.02.22 03:17

    자유롭고 다양한 자연스럽고 일류인 올림픽 관중석 가운데
    50년 전 과거에서 타임머신 타고 온 북한 응원단과 악단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평창올림픽 빙상 경기가 열리고 있는 강릉 올림픽파크는 필자를 잠시 30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필자는 30세 4년 차 기자로 탁구 종목을 취재했다. 당시 영상을 지금 보면 어설픈 구석이 보이는 개막식이지만 그때 잠실서 울리던 대형 북소리는 우리 가슴을 터질 만큼 뛰게 하였다. 대대적인 청소와 정비로 서울은 때를 벗은 것 같이 빛났다. 길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던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고 시민들은 택시 정류장에서 줄을 섰다. 중공(中共) 사람, 소련 사람, 동구 사람을 처음 본 것도 서울올림픽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서울올림픽은 한국과 한국민이 국제적 촌티를 벗어나는 첫 발걸음이었다.

    30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열린 올림픽 경기장에 앉아보니 30년 전 서울올림픽 때의 우리 모습이 까마득한 옛날 같다. 한국 관중은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서양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도 한 사람 없었다. 미국·캐나다 사람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자연스럽고 개성 있는 차림의 한국 관중 머리 위로 세계 최첨단의 비트 음악 응원가들이 흘러넘쳤다.

    막간에 등장하는 밴드는 그대로 뉴욕에 가도 될 듯했다. 군데군데 벌어지는 한국 관중과 외국 관중 간 좌석 확인은 쉽게 영어로 이뤄졌다. 쭈뼛거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남녀노소가 없었다. 경비 중인 젊은 경찰관들은 외국 관중과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자원봉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촌티를 벗고 있었다. 개방 경제와 성장, 자유로운 해외여행의 30년이 만든 변화가 눈앞에 그야말로 총천연색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유롭고 다양한 경기장 안 분위기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단체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자 100~200명이 똑같은 원색의 운동복을 입고 일사불란하게 4각형으로 모여 앉아서 똑같은 박자로 손뼉을 치면서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억양으로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를 외치고 있었다.

    북한에서 온 응원단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지만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지 모를 광경을 보면서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란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북한 응원단이 과거에도 왔지만 이렇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저걸 어디서 봤지…?' 그렇게 생각을 더듬어 가다 저 박자가 어릴 때 학교 운동회 때 하던 3·3·7 박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다. 저 북한 응원단은 1960~70년대 우리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것, 행동거지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에서 날아온 사람들 같았다. 어떤 전문가가 평양 밖 북한은 1세기 전 모습이라고 했는데 당 간부 딸들을 모았을 응원단조차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 응원단은 북한 선수 1명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 선수도 유니폼 모습만으로 북한 대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력도 최하위였다. TV로 본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역시 수십년 전 우리 TV 쇼에 나오던 복장과 수준이었다.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키스 타임이 있었다. 경기장 중앙 화면에 잡힌 젊은 연인은 물론이고 아저씨·아주머니, 할아버지·할머니 모두가 입을 맞췄고 경기장은 웃음과 박수가 계속됐다. 북한 응원단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보았더니 대부분 외면하는 중간에 몇몇이 곁눈질을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 주위 환경과 유리된 채 고립돼 있었다. 그 경기는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끝났다.

    경기 후 문제가 생겼다. 한꺼번에 1만명 안팎의 사람이 몰려드니 돌아가는 셔틀버스 운행이 마비됐다. 필자는 50분간 줄을 서 있다가 걷는 쪽을 택했다. 그 50분 동안 어떤 무질서도, 고함도, 욕설도 들리지 않았다. 불평들은 했지만 모두가 추운 밤 날씨를 참고 견디며 기다렸다.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한국은 선진 사회를 향해 이렇게 묵묵히 한 계단씩 올라서고 있었다.

    한국은행 추정치에 따르면 북한 GDP는 대전이나 광주와 비슷하다. 실제로는 대전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작은 지방 도시도 되지 않는 폭정(暴政) 집단이 폭발물을 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들고 있다. 그러나 저 혼자 50년 전(前)을 살고 있는 집단이다. 결코 영원할 수 없다. 30년 뒤 통일된 한국의 이북 땅에서 세 번째 올림픽이 열리고, 이 북한 응원단원들이 그 경기장에 앉아서 30년 전 강릉 올림픽파크를 추억하며 딸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속지 않고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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