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무 껴안고 명상하는 이유는

조선일보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입력 2018.02.22 03:12

    女 스노보드의 제이미 앤더슨
    캘리포니아 숲 거닐며 氣 받아 칼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

    평창 개막식, 자연 五行 표현
    메달 경쟁보다 중요한 건 자연 친화적 삶과 자유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그녀는 명상을 하는 자연주의자다. 강원도 평창에 오기 전엔 평소에 고향 캘리포니아주 타호에 들러 자작나무 숲을 걸었다. 경기 때마다 엄마 품에서 사랑을 받는 아이처럼 나무를 껴안고 기(氣)를 받는단다. 칼바람 속에서도 편안한 표정으로 보드를 탈 수 있는 이유다. 깊은 아름다움의 향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여자 스노보드 슬로프 스타일 금메달을 딴 제이미 앤더슨(28·미국)이다. 그녀를 보면서 소박한 농부 철학자인 피에르 라비가 생각났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무를 껴안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리라. 숫자 계산이나 맞춤법보다는 첫 목련의 기쁨과 나비의 이름들을 먼저 가르치리라."("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중)

    라비는 말했다. 정수(淨水)된 물만 마시고, 매연(煤煙) 속 아스팔트 위만 걸어 다니는 현대인들은 우주를 이루는 4원소, 물, 불, 공기, 흙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제대로 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단다.

    그런데 그것이 내 문제일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의사가 내게 조언한다. 하루에 30분 이상 햇빛을 받든지 아니면 비타민 D를 먹든지. 여름,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변변히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발라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보니 긴긴 겨울을 건물 밖으로 나가본 적이 별로 없다.

    그 후 햇살이 좋은 날이면 종종 창가를 찾아 앉아, 햇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을 즐긴다. 따스한 빛이 피부 깊숙이 스미는 촉감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내 피부가 성화(聖火)를 채취하는 오목거울이 된 느낌이다.

    오목거울이 햇빛을 모아 불을 만들듯 햇빛을 받은 피부는 나를 지키는 화로다. 우리 안에는 불씨를 지키고 불을 피우는 화덕이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있었듯, 서양에는 화덕의 신 헤스티아(베스타)가 있었다. 밀을 빵으로 만드는 불, 쌀을 밥으로 만드는 불, 불이야말로 생명이다.

    [ESSAY]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무 껴안고 명상하는 이유는
    /일러스트=이철원
    불이 부족하니 불을 모으고, 바람이 부족하면 심호흡을 하는 몸! 물이 부족하면 물을 마시는 몸! 태양은 몸 밖의 심장이고, 강물은 몸 밖의 혈관이라 하지 않나.

    물, 불, 공기, 흙, 그 4원소는 우리를 낳은 우리의 어머니고, 우리의 옛 몸이다. 그 원소들이 인연 따라 그렇게 그렇게 흘러들어 현재의 몸이 되었다. 그들을 충분히 누리는 자, 건강하게 살고 건강하게 죽는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자연의 요소를 다섯 아이로 표현한 것이었다. 물, 나무, 불, 흙, 금! 4원소의 바람 혹은 공기를 만질 수 있는 상징인 금과 나무로 바꾸면 5행이 된다. 4원소와 5행은 생을, 인생을, 세계를 자연의 원소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4원소가 아니라 5원소인 5행이 되면 음양을 곱해 10간이 되고, 12지지가 되어 훨씬 다양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 오행설은 우리의 자연관이고 달력이었으며, 생태학이었고 세계관이었다.

    오행(五行)은 돌고 돈다. 상생(相生)으로 돌거나 상극(相剋)으로 돈다. 물이 있어야 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불을 만든다. 불은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상극으로 돌 때는 물은 불을 끄고, 불은 금을 녹이고, 금은 나무를 패고, 나무는 흙의 영양분을 갈취해 성장하고, 흙은 물을 흙탕물로 만든다.

    언제나 강한 존재도 없고 어디서나 약하기만 한 존재도 없다. 서로 기대 힘을 얻고 서로 대립하여 투쟁하는 이 순환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영광도, 이 치욕도 내가 누리고 배워야 할 순환의 과정일 뿐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를 '동일한 것의 영원(永遠) 회귀(回歸)'라고 했다.

    흙으로 빚어진 우리는 신성한 바람 덕에 호흡하기 시작했다. 물과 흙으로 빚어지고, 불과 공기로 호흡하는 우리에게는 물, 불, 공기, 흙을 사랑하고 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물, 불, 공기, 흙과 친해져야겠다.

    바람을 가르고 얼음판을 나는 열일곱 소녀 클로이처럼은 살 수 없어도 산책을 하고, 나무를 껴안고, 동물들과 눈을 맞출 수는 있겠다. 클로이 김의 영상을 보니 그녀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인다. 그녀가 평창에서 딴 금메달이 부러운 게 아니라 그녀가 누리는 자유로움에 시선이 머문다. 재미교포인 그녀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금도 학원 뺑뺑이나 돌면서 살고 있을 거라는 비판, 새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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