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조민기 뒤에는 '침묵하는 목격자들' 있었다

입력 2018.02.21 16:12 | 수정 2018.02.22 11:31

이윤택-조민기 사건, 5가지 공통점
절대권력 가진 ‘스승’이 은밀한 공간으로 유인
발뺌하다 불리해지면 ‘법에 맡긴다’
알고도 외면하는 ‘침묵의 동조자들’도 존재

모두 사제(師弟) 관계였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조민기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스승이자 선배였다. 이들은 어린 제자들을 은밀한 공간으로 불렀다. ‘연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구실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들은 성폭력을 저질렀다. 스스로 ‘피해자 숫자를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그들의 제자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윤택과 조민기의 성폭력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에 대해 무대 안팎에서 “침묵의 동조자들이 제2의 이윤택·조민기를 양산하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절대권력 ‘연기 스승’이 제자를 범했다
제자들에게 이윤택과 조민기는 ‘왕’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제 연극계에서 캐스팅 권한을 쥐고 흔드는 이윤택의 지위는 ‘황제’에 가까웠고, 성공한 배우 조민기는 모교인 청주대에서 연극학과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윤택 감독과 배우 조민기./ 조선 DB
스승 조민기의 성추행을 폭로한 배우 송하늘씨는 “연예인이자 성공한 배우인 그 사람(조민기)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었다”고 했고, 이윤택에게 성추행당한 이승비 극단 나비꿈 대표도 “그는 연극이라는 세계의 왕, 종교집단의 교주와도 같았다”고 했다.

문제는 이 ‘황제’들이 피해자들의 ‘오늘’은 물론 ‘내일’까지 쥐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 연예계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구조라 이윤택이나 조민기에게 잘못 보이면 ‘여지’가 많지 않았다. 여성문화예술인연대 박은선씨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오랜 시간 일궈 온 꿈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문화예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고하지 않고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②오피스텔과 황토방, 密室로 불렀다
두 사람은 처음엔 피해자들을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불렀다. 이윤택은 자신이 별채로 쓰던 ‘황토방’에서 수차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밝혔다. 연극배우 김지현은 “많은 분들이 증언해주신 것처럼 황토방이란 곳에서 여자 단원들이 밤마다 돌아가며 (이윤택에게) 안마를 했었고 저도 함께였다”고 밝혔다.



조민기의 ‘밀실’은 청주 오피스텔이었다.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조씨가 오피스텔로 불러서 술을 마시게 했다”고 증언했다.
조씨의 제자 A씨(23)는 “여학생이 전화를 안 받으면 같은 학과 남자 선배들에게 전화해 ‘걔 오피스텔로 오라고 해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조민기의 제자 송씨도 “한밤중에 오피스텔에 불려간 여학생이 한 학번에 5~6명은 된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외부와 단절된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우발적인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범의를 품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증인들의 목격 가능성을 낮게 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③본인조차 피해자 규모를 모른다
스승의 성폭력은 피해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이윤택에 당한 사실을 밝힌 폭로자만 성폭행 2명·강제 안마 5명·성추행 4명까지 총 11명이다.

이윤택의 성폭력이 18년간 지속된 점, 피해 사실을 숨긴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감안한다면 피해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피해자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윤택 스스로도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원길 변호사는 “실제로 범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피해자수나 이름을 기억을 잘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특정한 범죄를 반복해서 하니까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민기의 성폭력은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3명의 폭로자가 나왔다. 피해자 송하늘씨는 “거의 한 번에 5~6명은 오피스텔로 불려갔던 것 같다”며 “피해자는 숫자로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조민기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④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이윤택의 성폭행은 2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도 5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윤택 사건이 공개되자, ‘이씨는 원래 그런 쪽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알고도 묵인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조선 DB
조민기의 경우, 여학생을 유인하기 위해 ‘남자친구’를 동원한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조씨로부터 추행을 당한 송하늘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조민기 교수의 오피스텔에 불려갔는데 남자친구는 먼저 잠이 들었고, 저는 혼자 그 상황을 버텨야 했다”며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너무 무서웠지만 그 어디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그 순간) 느꼈다”고 적었다.

송씨와 같은 사례가 여럿이었지만 주위 학생들이 이 문제를 나서서 고발하거나, 조민기씨의 행위를 저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학과 졸업생 김모씨는 “당시 조교를 비롯한 몇몇 선배들은 (조민기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네 몸은 네가 알아서 간수해야 한다’고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마 등의 행위를 거부하거나, 추행을 발설하면 극단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재령 음악극단 콩나물 대표는 “안마를 거부하면 다음날부터 극단 안에서 외톨이가 됐다”고 했다.

⑤일단 부인, 막판에야 ‘법적 절차(경찰 조사)’ 입에 올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두 스승은 그들의 행동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윤택은 이렇게 말했다. “안마에 대해서는 지금 제 잘못을 통감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남자건 여자건 다 했다.”

조민기도 처음에는 “확인 안 된 구설” “피해자도 없이 떠도는 소문” 등의 말로 강력 부인했다. 그러나 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되자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을 한 애들이 있더라” “노래방 끝난 다음에 얘들아 수고했다 안아줬다. 나는 격려였다”고 말을 바꿨다. ‘피해자 없이 떠도는 소문’에서 ‘격려 차원의 신체접촉’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윤택, 조민기는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일단 부인→합리화→법적 절차(경찰 수사)를 언급하는 대응 패턴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윤택은 “성관계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 만일 법적 절차가 강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9일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했다. 조민기도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르자 “성실히 경찰 조사를 받겠다”고 태세 전환했다.

두 사람의 대응 패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폭력 범죄의 경우, 입증이 쉽지 않아 이러한 발언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두 사람 모두 도덕적,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긴 했지만, 법적으로는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법률가 조언이 있었을 것”이라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것과 이를 입증해 가해자를 벌하는 데는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 공개사과 기자회견. 그는 19일 기자회견장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했다./ 이다비 기자
실제 이윤택이 기자회견 전에 법적 자문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연희단거리패 소속 연출가 오동식 씨는 21일 페이스북에 “이윤택 감독은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이를 연습하거나, 변호사에게 형량을 묻기도 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현율 변호사는 “처음에는 논란이 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대응하지 않다가 논란이 커지자 법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성범죄 증거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공소시효는 강간·강제추행의 경우 10년, 특수강간은 15년, 특수강도강간은 25년이다.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미성년자라면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현재 이윤택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2001∼2005년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의 규모와 연령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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