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이 '주교(bishop) 임명권'을 중국 정부에 사실상 넘겨주는 것을 골자로 한 양국 간 합의가 임박했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보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18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과 중국 정부가 이러한 주교 임명 방식에 합의했고,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중국 외교부의 차관급 인사가 바티칸을 방문해 합의서에 공식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언론은 중국 공산당이 임명한 주교에 대해 교황청이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는 선에서 절충한 것으로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 '주교'는 교구(敎區)를 담당하는 성직자로 예수를 따르던 열두 제자의 '사도(使徒)적 사명'을 계승한다. 따라서 교황만이 전 세계 주교를 임명하며, 교황 자신도 '로마 교구'의 주교다. 교황을 정점(頂點)으로 한 엄격한 계급 질서의 바티칸이 '중국 주교'에 한해선 예외적으로 임명권을 중국 정부에 양보한다는 것이다. '주교 임명권'은 두 나라가 1951년 외교를 단절한 최대 원인이었다. 이 사안이 해결되면 곧 외교 관계도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가톨릭은 교황이 임명한 40명의 주교가 관장하는 '지하 교회'와 정부가 임명한 7명의 주교가 이끄는 '공식 교회'로 이원화돼 있다. 공식 교회는 '중국천주애국회' 소속으로 철저히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통제를 받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하 교회 교인들과 교황이 임명한 주교들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지금도 감시와 투옥이 되풀이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작년 전당대회에서 "종교는 '중국 성향'이어야 하며 정부는 종교가 사회주의에 적응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이 지난 1년 반 접촉을 통해 중국 정부와 합의한 것이다. 이는 1077년 1월에 발생했던 가톨릭 역사에서 유명한 '카노사 굴욕'과 정반대 상황이다. 당시 '개혁파'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세속 군주의 성직자 임명 권한을 되찾으려고 했고, 이에 맞섰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했다. 결국 제후들이 교황 편을 들면서 폐위 위기에 몰린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머물던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문 앞 눈밭에서 맨발로 3일간 용서를 구하고 사면을 받았다. 교권(敎權)이 황권(皇權)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형식상으론 교권이 황권에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바티칸의 이런 화해 노력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지하 교회 주교 2명의 교구를 교황청이 2011년 파문까지 했던 애국회 주교들에게 양보하라고 지시하자 홍콩의 조셉 젠(陳日軍) 추기경(86)은 "예수에 대한 배신이고 교회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또 이달 중순엔 홍콩의 인권·학계·가톨릭 인사 15명이 "공산당이 임명한 7명의 주교를 인정하면 '제한적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고 교회의 도덕적 권위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공개서한을 전 세계 주교들에게 보냈다.
미국 정부도 교황청의 주교 임명 '사후(事後) 승인'이 인권과 종교 자유 문제에서 중국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청은 '지하 교회' 신자를 보호하고 중국 가톨릭의 통합을 위해선 화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바티칸과 중국의 화해에 불똥이 튄 곳은 대만이다. 양국이 외교 관계를 회복하면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에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황은 바티칸에 있는 대만 대사관을 '문화원' 수준으로 격하하거나 로마의 '몰타기사단' 건물로 옮기라고 요구할 것으로 이탈리아 언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