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출신이면 다 '마늘 소녀'인가

입력 2018.02.19 16:49 | 수정 2018.02.19 22:04

“방학인데, 시골은 안내려갔네?”
“시골은 뭔 시골이라요. 부산이라요. 부산은 대도십니다.”
선배라면 껌뻑 죽던 동기가 선배에게 화를 내면서 답했다.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말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때로‘시골’을 ‘지방’이라고 바꾸는 성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대구 출신에게도, 광주 출신에게도 ‘시골 안 내려 가느냐’ 고 물었다.

“그럼 대학 때 서울 올라온 거네”
서울은 ‘올라오는 곳’이었다.
기자가 대학 때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온 것은 맞다. 그러나 포천, 춘천, 화천, 양구, 속초에서 온 이들에게도 모두들 “서울에 올라왔다”는 표현을 썼다. 심지어 속초 출신도 스스로 “서울 올라온 지 십년”이라는 표현을 쓴다.

‘서울에 올라온다’는 것은 위도(緯度)나 고도(高度), 고속도로 상하행선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서울은 전국을 통틀어 ‘가장 높은 곳’ ‘가장 우월한 곳’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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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이벤트에는 언제나 ‘의외의 스타’가 있다. 이번에는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있는 국가대표 여성 컬링팀 ‘팀 킴’이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한국에서 ‘컬링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을 우리는 ‘의성 마늘 소녀들’이라고 부른다.
단도직입적으로 ‘의성’ ‘마늘’ ‘소녀’ 이 세 단어 중 두 단어가 틀렸다.
네 명 모두 경북 의성여고 동창들이고, 이 중 둘이 자매지간이다. ‘의성’은 그들의 지역적 토대로서 의미가 있다.

딱 ‘의성’까지였어야했다.
사람들은,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언론’들은 이들의 ‘스타성’을 부추기기 위해 이들을 ‘향토상품’으로 부각시켰다. ‘의성 마늘’을 갖다 붙인 것이다.
‘의성=마늘’은 어느 지자체장의 마케팅의 결과다. 한국에서 마늘은 김장용 ‘육쪽마늘’, 장아찌 담그는 ‘장손마늘’ 식의 구분이 있었을 뿐이다. 지자체가 ‘의성=마늘’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마늘이 의성 만의 상품도 아니다. ‘충북 단양 마늘’ ‘서산 육쪽마늘’도 마케팅으로치면, 의성에 못지 않다.

평균 나이 25.2세의 국가대표팀을 우리는 ‘소녀’라고 부른다. ‘극적인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성인 여성’을 ‘소녀들’로 둔갑시킨 것이다. 24세 윤성빈은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공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마도 ‘의성마늘소녀’라고 처음 작명을 한 이는 ‘시골 출신의 드라마틱한 성공’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물론 성공했다. ‘의성 마늘 소녀’라면 이제 초등생도 다 안다. 하지만 이건 서울 사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식을 지배한 ‘서울 중심주의’, 나아가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의 다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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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컬링은 ‘쓰리쿠션을 하지 못하는 당구’다. 빗질로 얼음판에 길을 만들어 ‘각도’를 운영하는 게임이다. 지적인 판단이 매순간 필요해 ‘얼음판 위의 체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오랜 트레이닝의 결과물이다. 마늘과는 별 상관이 없다. 설령 이들 부모님이 지금 ‘마늘밭’을 갈고 있다고 해도, 마늘과는 상관이 없다.(실제로 이들 선수들 가정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횡성’ 출신이었으면 ‘횡성한우소녀들’이라고 별명이 붙었을까? 순창 출신이었다면, ‘고추장 소녀들’이라 불렸을까.

이들 ‘팀 킴’이고, 각자의 이름은 김은정(28, 스킵), 김영미(27, 리드), 김선영(25, 세컨드), 김경애(24, 써드), 김초희(22, 피프스)다. ‘마늘 소녀’라는 손쉬운 애칭 말고, 이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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