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슈]우리는 '진짜' 노선영을 모른다

    입력 : 2018.02.13 17:42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미터 경기가 12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렸다. 레이스를 마친 노선영이 기록을 보고 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2.12/
    12일 밤 강릉오벌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 경기 후 노선영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생애 4번째 올림픽 레이스를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 올림픽, 후회없이 달리고 나와 후련하다"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열일곱부터 서른 살까지 4번의 올림픽을 나간 선수로서, 자부심이 클 것 같은데요?" 의외의 질문이었을까. 노선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 자신은 그런 마음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시니까…"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 마음이 조금 있는 것같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노진규 누나' 아니 '올림피언' 노선영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15종목, 144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올림픽에 4회 이상 출전한 선수는 단 4명에 불과하다. 남녀 통틀어 최다 출전은 1998년 나가노올림픽 이후 6회 출전에 빛나는 스키점프의 김현기(35·하이원), 최다출전 여성선수는 2002년 솔트레이크대회부터 5회 연속 출전한 '크로스컨트리 철녀' 이채원(37). 바로 그 다음이 2006년 토리노 대회부터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그리고 2018년 평창까지 '4회 연속' 출전한 스피드스케이팅의 노선영(29·콜링)과 이상화(29·스포츠토토)다. 단 한번도 서기 어려운 올림픽 무대에 무려 4번이나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선수들의 가치는 입증된다. 지난 16년간 매번 '바늘구멍' 선발전을 뚫어내고, 선후배들과 끊임없이 경쟁했다. 열일곱 소녀가 서른살 숙녀로 성장한 그 세월동안 태릉빙상장을 내집 삼아, 누가보든 보지 않든, 스스로와의 싸움을 견뎌내며 스케이팅의 한길을 또박또박 걸어왔다.
    2014년 소치올림픽
    노선영은 4년 전 소치올림픽 때 '노진규의 누나'로 알려졌다. 2016년 4월, '쇼트트랙 천재' 노진규가 골육종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다. 평창올림픽 직전엔 엔트리 번복의 곡절을 겪으며 예기치않은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노선영을 이야기할 때 놓치지 않아야 할 '팩트'는 '선수' 노선영이다. '올림픽 4회 출전'에 빛나는 '진짜 선수' 노선영이다.
    서현고 노선영
    노선영은 11살 때 과천빙상장에서 취미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불과 4년만인 15세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8~2009시즌 여자 1500m 대표선발전에서 2분05초,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선발전 1위에 올랐다.노선영이 선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사건'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 부문에 한획을 그은 선수다. 2011년 아스타나 알마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세 살 아래 동생 고 노진규는 누나 노선영을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신었고, 국가대표 누나를 보며 올림픽의 꿈을 키웠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누나와의 '올림픽 동행'을 꿈꿨다. '올림피언' 노선영은 동생이 떠난 후에도 '나홀로' 외로운 빙판에서 굳세게 버텼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첫출전부터 2018년 평창까지 지독한 훈련과 기나긴 여정을 꿋꿋이 버텨왔다. 선수로서, 올림피언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시종일관' 최선을 다하는 레이스를 다짐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평창올림픽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노선영은 또렷히 말했다. "동생 이유도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선수로서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 마지막 올림픽을 후회없이 마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4년간 준비해온 것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올림픽에 한번이라도 출전한 경험이 있는 '올림피언'들을 하늘처럼 우러른다. 메달 여부와는 무관하다. 올림픽 무대를 한 번이라도 밟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요, 축복이다. 실력이 있다고 누구나 밟을 수 있는 무대도 아니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올림픽 선발전에서 낙마하거나, 불의의 부상, 병마로 인해 좌절하는 모습들을 수없이 봐왔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은 선수라면 누구나 가슴에 새기고 있는 명언이다.
    그녀의 말처럼 '많은 분들은 모른다.' 4번의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피, 땀, 눈물로 분투했던 '진짜' 노선영을 모른다.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얼음을 지쳐온 노선영은 대한체육회 공식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항상 성실히 스피드스케이팅을 해왔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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