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의회·왕실 가교 '흑장관', 670년만에 여성이 맡기로

    입력 : 2018.02.14 03:04 | 수정 : 2018.02.14 15:07

    왕 시정연설때 하원회의장 앞에서 흑색봉 3차례 두드려 의원들 불러

    세라 블라크

    '첫 여성 △△'이란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여성이 각종 분야와 지위에 진출한 시대지만, 영국 의회에 670년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특수 공직이 남아 있었다. 이마저 여성의 손에 넘어갔다. 영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12일(현지 시각) 여성인 세라 블라크(52·사진)가 '흑장관(黑杖官·Black Rod)'에 취임했다.

    '흑장관'이란 국왕의 명을 받아 의사당 시설을 유지·보수하고 보안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를 말한다. 귀족 중심 상원(House of Lords)과 의회 내 왕실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영국 초기 평민 하원(House of Commons)이 태동한 1348년 에드워드 3세 시절 생긴 직책으로, 입헌군주제 전통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흑장관'이란 명칭은 1522년 이 관리가 금장 사자머리 장식에 흑단으로 된 봉을 사용하면서 붙었다.

    흑장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의회 개회식 때 왕의 시정연설을 평의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평의원들을 왕의 친위대인 상원 회의장으로 부르는 데는 격식이 필요하다.


     

    영국의 전임 ‘흑장관’이 여왕의 의회 연설에 의원들을 부르기 위해 하원 회의장 문을 두드리는 모습.
    영국의 전임 ‘흑장관’이 여왕의 의회 연설에 의원들을 부르기 위해 하원 회의장 문을 두드리는 모습. /영국 의회

    더타임스에 따르면, 검정 제복에 블라우스와 스타킹 등 전통 궁정 복장을 한 채 시종(상원 직원) 30명을 이끌고 온 흑장관이 의회에 들어오면, 평의원들은 흑장관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린다. 흑장관은 평의원 회의장 문을 흑색 봉으로 세 번 두드린다. 그제야 하원의장 등이 문을 열고 "오늘 옷 멋지네?" "여왕더러 세금이나 내라고 해" 같은 '불경한' 농을 던지고서야 왕의 부름에 응한다. 왕권으로부터 의회의 독립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인 셈이다. 약 500년간 같은 곳을 두드린 하원 회의실 문은 지금 깊게 패어 있다.

    세라 블라크는 체육 행정관료 출신으로, 4차례 올림픽과 런던 마라톤 운영에 관여했으며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일했다. 이 자리가 생겨난 이후 670년간 흑장관 직책을 거쳐 간 60명 모두 남성이었고, 지난 200여 년은 예외 없이 군(軍) 출신이었다. 블라크는 성명에서 "의회는 가장 작은 디테일이 큰 맥락만큼 중요하고 전통과 역사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곳"이라며 소임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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