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士林派, 이념에 사로잡혀 행정엔 무능했다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2.14 03:04

    박병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 정치·행정의 역사…' 펴내
    '능력주의로 신분제 극복했던 조선 전기 유교관료제 후퇴시켜'

    조선 건국 이래 국가를 운영해온 훈구파(勳舊派)를 몰아낸 사림파(士林派)의 집권을 국사학계는 정치사적 발전으로 평가한다. 국왕과 소수 척신(戚臣)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데서 벗어나 다수의 선비가 붕당(朋黨)을 이뤄 경쟁하고 견제하며 국정을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리학 이념에 따라 공동체 질서를 재확립해 조선 사회를 변모시켰다. 교과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역사책은 사림파를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전통 시대의 한국행정사를 연구해 온 행정학자 박병련(66)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런 통설을 논박한다. 그는 정년 퇴임을 맞아 펴낸 '한국 정치·행정의 역사와 유교: 유교관료제의 형성과 유자관료(儒者官僚)'(태학사)에서 관료제의 관점으로 조선시대를 재평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관료를 뽑을 때 이념과 실무 능력을 함께 고려한 조선 전기는 국정의 효율성이 높았는데 조선 후기는 관료 선발이 이념 일변도로 흘러 행정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이는 관료제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박병련 교수는 “조선시대 관료제는 글을 남긴 극소수 지배층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백성의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련 교수는 “조선시대 관료제는 글을 남긴 극소수 지배층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백성의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이 책은 먼저 전근대 동양 국가의 특성으로 간주되는 '가산(家産)관료제' 개념에 대한 재검토에서 출발한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이론화한 '가산관료제'는 동양의 관료가 군주의 재산인 국가를 관리하는 행정요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박 교수는 "서양의 봉건제는 관료들이 영주의 가계(家計)에 의존했고 중국은 전쟁 영웅의 가신(家臣)들이 관료로 변모한 데 비해 한국은 관료가 독자적인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었기에 가산관료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근대 한국의 관료제는 골품제로 대표되는 신분적 요소의 영향이 강했다. 고려시대에 과거제가 실시되면서 능력주의가 일부 채택됐지만 응시 자격은 제한됐고 고위 관료는 여전히 문벌(門閥) 귀족이 독점했다. 고려 말 주자학으로 무장한 신흥 사대부가 부상하고 과거제에 실무 능력 평가가 도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조선 왕조의 이념과 제도를 설계한 정도전은 도덕성과 실무 능력을 아울러 갖춘 '진유(眞儒)'를 주창하면서 입으로만 큰소리치는 '부유(腐儒)'를 비판했다. 조선 전기에 최고위 관료들이 뛰어난 행정 능력을 보여주고,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현(賢)과 능(能)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관노(官奴) 출신 김인, 기생 아들 장영실이 높이 등용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박 교수는 "유교 원리(능력주의)가 전통 습속(신분제)을 극복하면서 유교관료제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사림파가 집권하면서 이상적 관료형은 실무 능력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념으로 변화됐다. 정책에 관심이 없는 관료들은 권력과 이념 투쟁에 몰두하면서 백성의 삶과 직결된 행정은 아전과 서리의 손에 맡겼다. 도(道)와 이(理)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한 산림(山林)은 군주권을 제한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붕당은 차별과 배제의 도구가 돼 상대방을 극렬하게 비판했고 자기 당(黨) 안에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조선 후기로 가면서 문벌 집중이 심화돼 극소수 가문이 고위 관직을 독점했다. 박 교수는 "백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념과 사상에 사로잡힌 조선 후기의 유자관료는 도저히 높이 평가할 수 없고 관료제 측면에서는 거꾸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통 관료제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친다. 명분론이 능력과 정책보다 중시되는 것이다. 박병련 교수는 "우리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토대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선 어떤 인재를 관료로 뽑을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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