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중심은 남자? 통쾌한 한 방 날려주마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2.14 03:04

    [뮤지컬 리뷰] 레드북

    솔직하게 말하면 화를 낸다. 몸과 연애에 대해 글을 쓰면 정숙하지 못하다 비난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고, 여자가 설쳐대니 나라 꼴이 어지럽다고…. 게다가 명성과 권위를 무기로 함부로 대하려는 못된 인간, 꼭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드북'(연출 오경택)은 여전히 남자 중심으로 도는 세상을 향해 통쾌한 주먹 한 방을 날린다. 속 시원한 사이다 같다.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 깜찍한 무대와 의상, 쉴 틈 없이 웃겨주는 유머까지 장착했다.

    솔직해서 늘 손해 보는 안나(왼쪽)에게 레드북 문학회의 로렐라이와 여인들은 늘 든든한 친구다.
    솔직해서 늘 손해 보는 안나(왼쪽)에게 레드북 문학회의 로렐라이와 여인들은 늘 든든한 친구다. /바이브 엔터테인먼트

    여자는 글을 써도 안 되고, 남편 없인 재산도 못 갖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 솔직한 게 죄라 취직해도 잘리기 일쑤인 안나(아이비·유리아)에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글재주가 있다. 우연히 잡지 레드북(Red Book)에 연애 상상을 담은 야한 소설 '낡은 침대를 타고'를 연재해 폭발적 인기를 얻는데, 사회적 비난과 법적 심판의 위기가 닥쳐온다. 하지만 안나에겐 자신만 사랑해주는 변호사 브라운(박은석·이상이), 또 늘 안나를 응원하는 여장 남자 로렐라이(지현준·홍우진)와 레드북 문학회의 여인 친구들이 있다.

    이 뮤지컬의 최대 장점은 발랄함.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라고 노래하던 안나는 노을과 구름에 빗대 "사랑은 계속 변하는 것"이라고 읊는다. 능청스러운 여장 남자 로렐라이의 노래와 연기 재미도 짭짤하다. 침대를 덮은 흰 천과 컬러풀한 조명으로 야한 상상의 판타지를 풀어내는 '낡은 침대를 타고' 무대와 노래도 재치 넘친다. 공연의 백미다.

    발랄한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는 세상", 안나는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라고, "그걸로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을 추행하려던 유명 평론가를 폭행한 죄로 감옥에 갇힌 안나에게 로렐라이와 친구들은 말한다. "당신은 죄가 없어요. 세상이 잘못된 거고, 그 남자가 나쁜 거예요."

    뮤지컬은 이 세상 모든 안나들에게 손을 내민다. 어떤 선택을 하건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에 꼭 귀 기울여 줄 거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당당히 세상과 맞설 용기를 주는, 속 깊은 위로다. 공연은 3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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