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의 눈빛 비명 보고 포기"

조선일보
  •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18.02.13 03:29

    [제1부-한국인의 출산 보고서] [6·끝] 4050 두 가장의 '다른 선택'

    아이 안 낳는 기자 출신 베스트셀러 소설가 장강명

    육아·직장생활 고단함에 하소연
    돈은 왜 그렇게 많이 드는지… 얼굴 삭은 모습에 정관수술 결심

    한 아이 키우기도 정말 힘든데 동생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니요

    나와 아내는 10년 차 부부다. 결혼한 이듬해 부모가 된다는 일에 대해 둘이서 충분히 이야기했고,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내가 정관수술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자기 솜씨에 자부심이 컸다. 바지를 내린 채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내게 "하나도 안 아프죠? 정말 빨리 끝나죠?"라며 뿌듯해하셨다.

    우리 부부가 그런 결심을 내린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친구들 탓이 컸다. 아내와 나는 대학 같은 과 출신 커플이라 공통의 지인이 많다. 그즈음 일찍 부모가 된 친구를 함께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우리 사이에는 늘 이런 대화가 오갔다. "걔 얼굴이 확 삭았네." "너무 고생스러워 보이더라."

    ‘한국이 싫어서’‘댓글부대’를 쓴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43)씨는 결혼한 지 10년 됐지만 아이는 없다.
    ‘한국이 싫어서’‘댓글부대’를 쓴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43)씨는 결혼한 지 10년 됐지만 아이는 없다. 아내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하고 정관수술까지 받았다. 장씨는“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고단하다. 게다가 유치원비, 학원비, 대학 등록금 등 육아 지출은 겁에 질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특히 일을 하다 어머니가 된 여자 동기, 후배들은 눈빛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고단함에 대해 분노의 하소연을 쏟아내다 "그래도 아기가 잠든 모습을 보면 피로가 다 풀려"라며 말을 갑자기 바꾸곤 했다. 몇 달 치 피로가 담긴 목소리로. 그 똑똑하던 여자 후배들 중 상당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두 번째 이유는 돈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기저귀 값 번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런데 지출 항목이 유치원비, 학원비, 대학 등록금으로 이름만 바뀔 뿐, 지출 비중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겁에 질렸다. 이제 겨우 딸기케이크니 수제맥주니 하는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됐는데!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
    당장의 딸기케이크와 수제맥주가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고 새 길을 걷고 싶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꿈꾸는 자기 미래가 있었다. 그런 도전을 감행했다가 실패하더라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돈을 모아둬야 했다. 몇 년 뒤 나는 사표를 내고 전업 소설가가 됐다. 아이가 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정부에서 뭘 해줬다면 아이를 낳았겠니?'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냥 웃을 것 같다. 기저귀 값 보조로는 충분치 않다. 유치원비, 학원비, 대학 등록금까지 걱정 없어야 한다. 탈진하지 않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도 일시적 실업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해야 한다.

    '턱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이기적인 녀석이군'이라는 비난을 듣는다면 대꾸할 말이 없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나라 살림은 위에 언급한 복지 지출을 당장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국부도, 조세부담률도 한참 높은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 말은 곧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산업, 교육에서 커다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이기적이라는 지적도 옳다. 내 또래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상호 존중하며 각자 행복을 좇고, 그러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이상적이라 여기며 자랐다. 내 다음 세대도 그렇다. 이런 이들에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같은 구호는 몹시 기괴하게 들린다. 아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섹스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라는 말인가? 둘째 아이는 첫째의 장난감 같은 존재인가?

    정책 당국자들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에서 고심을 거듭하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구호를 낸 것 같다. 나는 정부가 조급해하지 말기 바란다. 어떻게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인식 자체가 잘못이다. 인구구조 변화라는 해일이 오고 있다. 급작스러운 충격에는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쓰나미 이후에도 해수면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해안의 모습 자체가 바뀔 것이다. 해변 어떤 지역은 물속에 잠길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게 우리 사회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 아닐까.

    노동, 생산에서 행정, 복지까지 각 분야에서 노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런 구상과 준비에 우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출산 극복'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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