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뼈대, 韓紙 피부… 백호를 꿈틀대게 한 비결이죠"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2.13 03:01

    평창 올림픽 개막식 퍼핏 디자이너 니컬러스 마혼 단독 인터뷰

    '태양의 서커스' 등 제작 참여
    "1년 전에 본 첫 스케치 환상적… 생명 불어 넣으려 혼신 다했죠"

    "사람들 마음이 모이고, 믿기 힘든 거대한 에너지가 그 안에 흘렀어요. 그 속에 뛰어들고 싶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퍼핏 디자이너인 니컬러스 마혼이 말레이시아의 퍼핏 제작사에서 뼈대와 머리 부분까지 만들어진 청룡 퍼핏의 구동을 시험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퍼핏 디자이너인 니컬러스 마혼이 말레이시아의 퍼핏 제작사에서 뼈대와 머리 부분까지 만들어진 청룡 퍼핏의 구동을 시험하고 있다. /니컬러스 마혼
    12일 아침(현지 시각 11일 저녁) 미국 뉴욕 집에서 전화를 받은 퍼핏(사람의 조작으로 움직이는 인형) 디자이너 니컬러스 마혼(38)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살짝 떨렸다.

    백호, 청룡, 주작, 현무에 인면조(人面鳥), 사슴과 소, 멧돼지, 귀뚜라미….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와 우리 민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85종의 퍼핏들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역사 속 동물이었지만 느낌은 현대적이었다.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고 "뮤지컬 '라이언 킹' 속 동물이 뛰쳐나온 것 같다"는 호평이 줄이었다.

    마혼은 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이다. 우리 역사를 해석해 인형 콘셉트를 정하고 기본 설계하는 건 배일환 제작단 미술감독이 했지만 살아 숨 쉬듯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기술적인 터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평창 조직위가 찾아낸 베테랑 전문가가 마혼이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역할을 한 셈이다.

    평창에서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막 집에 도착하던 참이었다는 그는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은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들떠 말했다. 개막식 퍼핏 작업을 제안받은 건 1년 전쯤이었다. "제안을 받고 콘셉트 스케치를 봤는데 평생 처음 보는 동물들이었어요. 환상적이었죠. 연필 선으로만 존재하는 동물을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까, 디자인을 살피며 구동 관절과 형태, 재료를 구상했어요. 한국 팀의 비전을 녹여 무대 위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게 제 역할이었어요."

    개막식 무대를 보고 '라이언 킹'을 떠올렸다면 눈썰미 좋은 관객이다. 마혼은 뮤지컬 '라이언 킹' 동물 인형들을 만든 마이클 커리를 14년 전 만나 인형 제작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건 그에게 배운 것"이라고 했다.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TV 쇼부터 '태양의 서커스', 초대형 꼭두각시 인형을 움직이는 국제 행사까지 인형과 관련된 건 안 해 본 게 없다.

    제작을 맡은 건 말레이시아 회사 레드 서클. 마혼이 2015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러피안 게임 개막식 때 함께 일해 이미 팀워크가 탄탄했다. 공연자들에게 가해지는 하중까지 계산하며 시험과 수정을 거듭했다. 1년여 동안 말레이시아에 2번, 한국에 3번 등 각 1주쯤 머물며 현장 작업을 살피고, 그 외엔 뉴욕 스튜디오에서 이메일과 화상 전화로 협업했다.

    개막식에 등장한 백호 퍼핏.
    개막식에 등장한 백호 퍼핏. /연합뉴스
    "인형 크기도 거대했지만, 예상 기온 영하 20도에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무리 없이 움직일 재료로 구조화하는 건 큰 도전이었지요." 가벼운 알루미늄 프레임에 플라스틱 신소재 몸체를 사용했다. 마혼은 "이번 인형들의 표면 마감 재료로 쓴 한지는 정말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재료였다"고 했다. 그는 한지를 '핸지(Hanji) 페이퍼'라고 불렀다. 말레이시아 제작진이 한지 질감과 먹 느낌을 낯설어 한 탓에, 배일환 감독은 현지 작업장에서 직접 붓을 들어 중요 채색 작업을 맡으며 공을 들였다.

    마혼은 "군인과 자원봉사자 등 한국 공연자들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이전에도 경험 없는 공연자들을 훈련시켜봤지만 한국 공연자들은 특히 특별했어요. 개막식에 참여하는 걸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 나아지려고 열정을 다했죠. 흥과 끼가 넘쳐 즐기면서 스스로 새 동작을 발견해나갔어요."

    지금 한국을 생각하면 뭐가 떠오를까. "한국 예술가들과 종일 함께 일하고 저녁이면 식당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셨죠. 오래 생각날 거예요. 평생 못 잊을 기억과 경험을 준 평창 올림픽과 한국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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