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훈련 재개, 말 흐리기 시작한 정부

조선일보
입력 2018.02.13 03:20

정부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훈련 재개에 대해 말을 흐리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12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훈련이 중단·연기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적절한 시점에 말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연합훈련을 4월에 재개하느냐'는 질문에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지난달 말 미국 합참은 "올림픽 이후 곧바로 훈련을 지속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때 우리 국방부도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하는 것은 맞는다"고 했다. 그랬던 것이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내밀자 곧바로 흔들리고 있다.

한·미 정상은 1월 초 훈련 연기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 발표는 '올림픽 기간 중 연합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였다. 백악관 발표는 '올림픽과 훈련의 충돌을 회피(deconflict)한다'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올림픽 이후 훈련을 재개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올림픽과 관련해 연기한다고 한·미 정상이 합의한 것에 따라 해석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국민은 '올림픽이 끝나면 한·미 연합훈련은 한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올림픽 때 안 한다고만 했지 끝나고 한다고 말한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국민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말장난을 한 셈이 된다.

정부는 '훈련을 좀 더 연기한다'고도 말하지 않고 있다. 외교적 표현은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국 방위 안보 문제는 다르다. 원칙이 흔들리면 모두에게 무시당한다. 작년 사드 배치 당시 '모호함'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를 잡으려 하다 양쪽 관계를 모두 망쳤다. 정부의 본심은 한·미 훈련 연기나 중단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지난 12월 미 NBC 인터뷰를 통해 "평창올림픽 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한 뒤 슬금슬금 연합훈련에 대한 입장을 허물어 왔다. 얼마 안 있어 미국에 훈련을 대폭 축소하거나 여름 이후로 연기하자고 제안하고 본격 설득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지금 한·미의 최우선 목표는 북핵 폐기다. 북이 핵을 버릴 의사를 밝히고 협상 테이블로 나온다면 훈련 연기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우리만 계속 양보하면 북핵은 점점 기정사실로 굳어져 간다. 미국이 이를 인내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1990년대 초 북한의 비핵화와 핵 동결 약속을 믿고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했지만 돌아온 건 핵무장이었다. 동맹 관계에서 연합훈련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연합훈련을 그만두자고 하면 한·미 동맹이 파기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핵을 들고는 있지만 궁지에 몰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동생까지 보내 미소 작전을 펼 까닭이 없다. 대화를 하더라도 북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핵을 갖고 제재도 피할 수 있다'는 김정은의 기대를 더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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