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는 왜 쓰레기 더미에 신음하는가

    입력 : 2018.02.12 16:53 | 수정 : 2018.02.13 09:21

    민노총 소속 노조, 지난달 29일부터 동국대 본관 점거 농성
    퇴직 인력 8명 근로장학생으로 대체하자 “노조 파괴 시도” 반발
    대학 측 “최저임금 인상으로 불가피한 조치”

    # "손대기만 해봐!" "죄송합니다. 조금만 치우겠습니다."
    지난 8일 오전 8시쯤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 남자 화장실 앞에 빨간색 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 두 명이 누워 소리를 질렀다. 두 여성은 휴지와 컵라면 용기, 종이컵 등 쓰레기 더미를 등에 깔고 발을 허공에 차며 "건드리지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스크를 쓰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양손에 든 남성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사과했다.

    # 또 다른 ‘빨간색 조끼 여성’이 교내 한 건물 2층 복도 쓰레기통에서 자신의 몸만한 대용량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다. 여성은 봉지를 ‘북북’ 뜯더니 안에 담긴 쓰레기를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복도가 순식간에 오물 천지가 됐다. 동국대 로고가 적힌 앞치마를 두른 한 여성이 이를 치우려고 다가오자 날 선 반발이 돌아왔다. “앞잡이들! 부끄럽지도 않냐! 건드리기만 해.” 앞치마를 두른 여성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분회 소속 청소 근로자들이 8일 본관을 청소하려는 직원들을 막아서고 있다. /한동희 기자
    조끼를 입은 여성들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분회 소속 청소 근로자다. 총 47명이 지난달 29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있다. 이들 눈치를 보면서 청소하는 남성들은 본관에서 일하는 행정실 직원들. 욕설을 듣고도 말없이 돌아선 여성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다른 노조(동국노조) 소속 청소 근로자다.

    파업 근로자들이 24시간 ‘보초’를 서며 행정실 직원들과 동국노조 동료들이 청소를 못 하도록 감시하고 있는 현장이다. 본관 외에도 경영관과 법학관 등 민노총 노조가 관리하는 건물이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12일 현재까지 대학 측과 노조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 노조 “‘알바’로 노동자 없애려 한다” VS 대학 “기존 근로환경 악화 막는 차선책”
    파업 근로자들이 학교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71세 정년을 채우고 지난해 말 퇴직한 8명에 대한 대체인력 때문이다. 대학 측은 당시 퇴직한 인력을 ‘근로장학생(일을 하는 대가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 8명으로 채우겠다고 했다. 대학 관계자는 “정식 근로자를 채용하기에는 최저 임금 인상을 비롯해 줄어드는 예산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컸다”며 “결원 때문에 기존 근로 환경이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선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민노총 소속 노조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김다임 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1월 2일 동국대에서 연 집회에서 "2013년 청소노동자 8명이 청소하던 4층 도서관 건물을 2014년부터 3명이 청소하고 있다"며 "3명이 8개 화장실 200칸을 청소하고 있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앞으로 생길 결원을 계속 ‘알바’로 메워 모든 근로자를 없애려 한다”며 “알바 노동자를 채용해 학생과 청소근로자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원들은 지난달 초 동국대 한태식(보광 스님)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응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난달 31일에 파업에 돌입했다. 반면 동국노조원 30명은 지난 1일 새로운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새로 맺고 청소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민노총 소속 동국대 청소 근로자가 쓰레기를 고의로 투기하고 있다. /한동희 기자

    ◇ 노조 “수백억 적립금 풀면 된다” VS 대학 측 “적립금 전용은 사립학교법 위반”

    동국대 측은 “노조가 학교 사정이나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대학 측에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고 반박했다.
    동국대에 따르면 주 수익원인 등록금 수입이 최근 3년간 계속 감소하면서 예산도 줄었지만 청소용역 비용은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는데 나갈 돈이 늘어나 긴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기존 근로자의 청소 면적이나 근로시간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노조가 강경한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며 “동국대는 불교종립 학교인데 지난 4일에는 노조가 학교에 목사를 불러 예배를 하는 등 갈등만 고조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예산이 부족하면 대학 적립금을 풀어서라도 신규 채용에 대한 자금을 충당하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지난해 동국대 서울 캠퍼스에 들어온 기부금만 90억원에 달하고 이렇게 쌓인 적립금이 수백억원에 달해 청소 근로자 8명의 인건비를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그 정도로 학교 재정이 취약하다면 전북 서남대처럼 폐교 조치를 하는 것이 교직원과 재학생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노조는 “청소 근로자 인원 감축은 결국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동국대가 2016년 결산 기준 보유한 적립금은 479억3700만원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적립금은 연구와 학교 인프라 건축, 장학금, 퇴직금 등 구체적인 목적을 정해두고 예치되며 각각 적립 목적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학교 관계자는 “기부금과 적립금이 대부분 장학금과 연구비를 위해 예치된 것”이라며 “적립금을 용역비로 전용하는 것은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조와 학교의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피해가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국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씨(25)는 “학교와 청소 근로자 양쪽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서로가 물러서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이면 학생들의 학습권만 해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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