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잘 모르는 사람

조선일보
  •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입력 2018.02.12 03:10 | 수정 2018.02.12 10:26

    잘 모르는 사람

    한참 늙어 가야 할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대합실은 우주의 바깥보다 고단합니다

    아직 거슬러 받지 못한 셈이라도 있는 듯

    닳아 없어진 표정의 사내는

    첫차로 문상을 가야 합니다

    부르지 못한 이름은

    함부로 밟은 금처럼 차갑습니다

    더는 기다릴 게 없는 사람처럼

    슬픔을 믿지 않기로 합니다

    어제는 경이롭고 내일은 뼈아픕니다

    ㅡ김병호(1971~)("백핸드 발리", 문학수첩, 2017)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잘 모르는 사람
    '한참 늙어 가야 할 얼굴'은 한참 늙지 않은 얼굴이다. 한데 이미 닳아 없어진 표정이라니! 기다리는 게 많아서, 그러나 '아직 거슬러 받지 못'해서, 고단했을 것이다. 첫차로 문상을 가야 할 사람이라면 소중한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거다. 누군가 살아있는 어제는 경이였고 누군가 죽은 내일은 상처다. 못한, 없어진, 없는, 않기로 등의 부정 서술어에 의해 오늘의 상실은 강조된다.

    기다릴 게 많으면 부정의 서술어와 함께 슬픔도 많아지기 마련. 기다리는 게 없어질수록 '함부로 밞은 금' 같은 주름도 늘기 마련. 오늘의 주름이 어제를 경이롭게 하고 내일을 뼈아프게 할 것이다. 제목 '잘 모르는 사람'을 나는, '잘 아는 사람'이나 '자화상'으로 읽는다. 그럼 죽은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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