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최악에 대비'한 한국 대표팀

입력 2018.02.12 03:16

'쇼트트랙'은 111.12m의 짧은 트랙에서 열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선수들이 레인 구분 없이 뒤엉켜 질주하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선 미국의 오노가 김동성과 부딪힌 것처럼 '할리우드 액션'을 해 김동성이 실격을 당하기도 했다. 메달 후보와 동반 탈락하는 반칙 작전을 쓰는 나라도 있다. 1988년 동계올림픽에 처음 쇼트트랙이 도입된 이후 지난 대회까지 한국은 48개 금메달 가운데 21개를 땄다.

▶그제 평창올림픽 여자 3000m계주 예선에서 한국은 또 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모두 27바퀴 레이스 중 23바퀴를 남겨놓고 이유빈이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졌다. 경기장에는 "안 돼!" "어떡해!" 안타까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우리 선수들은 한때 중계 화면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뒤처졌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따라잡아 결국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우며 1위로 골인했다. 인터넷에는 '이 맛에 올림픽 본다'는 찬사가 넘쳤다. '괴물 아닌가'라는 일본 네티즌 반응도 있었다. 

[만물상] '최악에 대비'한 한국 대표팀
▶정작 선수들은 담담했다. 최민정은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우리는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게 훈련을 지겹도록 반복한다"고 했다. 상대가 반칙을 시도할 때, 추월하다 접촉했을 때, 혼자 실수로 넘어졌을 때, 충돌해 넘어졌을 때 등등 모든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 이유빈이 넘어지자 최민정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달려나간 것도 그래서였다.

▶찜통더위가 이어졌던 지난해 여름 미국의 빙속 스타 샤니 데이비스가 한국에서 90일간 훈련했다. 그는 쇼트트랙 선수였다가 한국인 스승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꿔 올림픽 2연패를 한 인물이다. 그는 "중·고생과 함께 훈련했다고 비웃지 마라. 얼음 위에 서는 시간 외에는 야외에서 체력 훈련을 했다. 어린 한국 선수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웃었다. 한국의 어린 쇼트트랙 선수들이 챔피언에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스포츠의 매력은 피나는 연습은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걸 눈앞에서 실제 상황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보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미리 준비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말로는 알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진리다. 그로 인해 숱한 생명까지 허무하게 잃는 우리 사회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빚어낸 이 명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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